[소설] 346.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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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7장 노래와 덫

그렇다고 해서 그 돈을 잃어버린 연줄처럼 허공에 속절없이 날린 것은 아니었다. 배완호가 보았을때는 객기였고 허튼 수작이었다.

그러나 봉환으로선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산술을 해석하는 줄거리가 배완호와 달랐을 뿐, 해답은 결국 같은 결과로 귀결된다는 것을 봉환은 알고 있었다. 나눗셈과 곱셈은 산술방법이 극과 극이라할 만치 판이하지만, 같은 해답을 얻어낼 수 있는 계산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잡지를 뒤로부터 읽기를 버릇들인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그러나 뒤로부터 읽는 방법을 선택했다 해서 그 잡지에 담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꿰뚫지 못하란 법은 없다. 이를테면 안목 나름인 셈이었다.

가령, 중개인이 되어주기를 안달복달하며 의심이 가득찬 시선으로 돈을 건네는 것과 아무런 담보나 조건없이 화투패를 던지듯 건네준 돈은 성격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였다.

그러나 그 효과를 발휘하려는 시점에 이르게 되면, 또 다른 모습의 성격 차이가 뚜렷하다. 그런 산술방법을 박봉환에게 가르쳐 준 장본인은 의성마늘 중계지에서 만났던 마늘상회 주인이었다.너무나 손쉽게 단골거래를 터주었고, 서울의 가락시장 거래선까지 알선해주었던 그가 박봉환으로 하여금 돈을 거꾸로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는 당당하게 권리금 성격의 음지돈을 요구했었다. 초면에 거래를 트려는 박봉환같은 뜨내기 처지로선 결국엔 그보다 더 편리한 거래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박봉환은 서문식당에다 아예 식주인을 정하고 대전시내를 쳇바퀴 돌리듯 열불나게 드나들었다. 봉환은 끊임없이 물자를 실어나르고 배완호는 대전집에 묵으면서 판매와 수금을 도맡는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왕새우는 잘 팔렸다. 입맛이 상향조정된 월급쟁이들이 대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먹거리도 덩달아 상향조정돼 값비싼 식품들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어난 까닭이었다.

불황기의 한파를 분별없이 거슬러 오르는 힘겨운 장삿길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지만, 불황기라 해서 한 번 맛들인 먹거리를 잊어버리지는 못하는 법이었다.

회 전문 식당에서는 배완호에게 선금까지 질러주며 물자를 주문할 지경이었다. 봉환과 손씨 사이에도 외상거래가 있을 수 없었다. 매수는 헐값이었고, 매도는 짭짤한 수익으로 이어졌다.

왕새우와 꽃게를 같이 취급하였기 때문에 구색을 맞추는 일과 거래선들과의 신용관계가 급격하게 타격을 받을 염려도 우선은 없었다.

그런데 식당 안주인에게 이상한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는 눈치를 알아챈 것은 봉환이가 식당에 단골을 정하고 드나들기 시작한지 보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서른을 갓 넘겼을까 말까 한 나이의 새침한 여자가 어느날 느닷없이 나타나 주방일을 거들고 있는 게 발견되었다. 키꼴이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첫 눈에 호기심이 생길 만큼 예쁘장하다는 얼굴의 여자였다.

그러나 꼼꼼하게 따지고 들면, 결코 미모의 얼굴은 아니었다. 사내들의 눈길을 잡아놓을만치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첫 눈에 예쁘장하다는 인상을 진하게 남기는 원인이 있었는데, 그것은 천성으로 타고난 듯한 유난히 흰 피부 때문이었다.

흰 피부가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결함을 굴절시키거나 에누리없이 분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말 수가 적은 편이기도 했다. 그녀의 사촌 언니인 안주인이란 여자는 대체로 수다스런 편이었다. 초면인 고객들 식탁에도 거리낌없이 끼어들어 넉살떨기를 예사로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서해바다에서 아침 해가 솟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악소리를 지르며 수선 피울 여자가 아니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그녀는 스스로 경계선을 그은 듯 주방 조리대에서 몇 발짝 벗어나지 않는 한계 안에서 고개를 다소곳하게 숙인 채 언니의 주문에 따라 주방일을 거들고 있었다.

안주인의 눈치가 이상해졌다는 것은, 봉환이가 식당으로 들어설 경우 안주인은 애써 그녀로 하여금 음식수발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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