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정 갈등 이런식으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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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사정위원회가 출범 13개월만에 최대의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이번주중 각기 노사정위 탈퇴를 공언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한 노동계 달래기에만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사용자측인 재계 또한 노사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지 말 것을 주문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산하다.

특히 민주노총측은 25일 현정부와의 전면투쟁을 선언하고, 27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까지 계획하고 있어 노.정 갈등이 정면충돌로 치달을 우려도 적지 않다.

노사정간에 어느 정도의 이해관계 대립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노사정위라는 사회적 협약의 전체 틀이 위협받는다면 우리 경제의 추락은 불을 보듯 훤하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조조정을 위해 갈 길은 아직 멀고, 이 과정에서 노사간 화합은 대외신인도 유지에 절대적인 요소다.

3월의 본격적인 임금협상을 앞두고 그러잖아도 불안이 많은 터에 노동계가 강경 투쟁으로 나선다면 우리 모두가 희생을 감내하며 일궈온 경제회복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노사정위가 실질적인 협약기구로서 제대로 기능을 해 오지 못했다는 점은 우리도 인정한다.

따라서 '들러리' 를 넘어선 노사정위의 위상 및 기능강화는 필요하다.

문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다.

합의사항 이행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와 법적 구속력을 요구하는 노동계 주장에 대해 정부는 특별법은 제정하되 합의사항의 법적 구속력은 법제화하지 않는 선에서 노동계를 달래려 하고 있다.

사용자측도 법제화엔 굳이 반대하지 않지만 구조조정과 관련, 결과에 대한 사후협의만 수용한다는 데는 단호하다.

양대 노총은 법적 구속력 없는 법제화는 알맹이 없는 '포장' 에 불과하다며 구조조정의 사전 협의를 고집하는 상황이다.

노사정위의 오늘의 위기는 사실 그 태생적 문제점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적지 않다.

규정상 대통령자문기구이면서도 기능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사간 교섭과 협의는 산업이나 전국차원이 아닌 개별기업 차원에서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

노조의 경영참가와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사회협약기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제화로 '옥상옥' 을 만드는 것보다 참여주체들이 의식과 관행을 개혁하고 상호인내와 이해로 스스로 위상을 높여 나가야 한다.

기업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자 경영자의 고유권한이다.

사전협의와 정리해고 철폐에 관한 노동계의 요구에는 정부가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불법투쟁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정치권의 개입이나 임시방편식 '달래기' 는 문제를 더욱 키울 뿐이다.

어설픈 편들기보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쏟아지는 실업자 대책에 만전을 기하는 '정공법' 이 정부의 할 일이다.

노동계 역시 탈퇴에 앞서 노사정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부터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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