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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학생 선발' 대학에 맡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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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학입시 제도가 또 바뀐다. 현재 중3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8학년도부터 고교 학과성적과 학습활동의 총체적 평가를 주된 전형자료로 삼는 대입 실시가 알려진 내용이다. 중3 이하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이래저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또 입시제도가 변경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새 제도에 적응하려면 어떤 과외를 해야 하는지 지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변천사는 화려하다. 광복 후 열다섯 차례 정도 모양새를 달리했으니 4년에 한번꼴로 개정된 셈이다. 입시 관리를 국가가 주관하느냐, 대학에 일임하느냐, 그야말로 갈지(之)자 행보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대학별 입시를 치러보니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 금품이 오가고 시험문제가 유출되는 등 부정입학이 난무하는 게 아닌가. 부조리 방지를 위해 자격고사 성적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지만 부작용을 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성적우수자 탈락, 비인기 대학 정원 미달, 대학.학과 간 극심한 학력차가 발생하자 대학별 고사로 회귀할 수밖에….

그러던 차에 1969년부터 예비고사와 학교별 고사의 병행이 대입제도의 골간으로 자리잡는다. 이 역시 입시의 이중 부담과 과열과외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다. 엄청난 과외비 때문에 대학입시는 학부모의 등뼈를 휘게 하는 원흉으로 자리매김한다. 과외가 사회문제화하면서 국가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문을 연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의 신입생을 뽑는다는 대입의 본질적 기능은 뒷전으로 빠진다. 80년 이후 대입의 목표는 과외와 전쟁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변질한다. 전형방법으로 과외없는 고교 학습만으로 충분하다는 학력고사와 내신성적, 수능과 종생부.학생부와 논술.면접 등 갖은 조합이 등장한다. 백약무효. 수능준비를 위한 학원과외는 더욱 창궐하고 고교의 성적 부풀리기로 인한 내신의 변별력 부족과 대학의 선발기능 약화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대입제도 문제를 한층 복잡하고 심각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위정자의 과욕이다. 정권을 잡으면 과외병을 완전히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당연하다는 듯 대입에 손을 댄다는 점이다. 새 정부 출범 때의 중3은 대입 변경이라는 화살을 피할 길이 없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작용의 시정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치적을 염두에 둔 대입제도의 개정은 대학에 혼선을 주고 학생과 학부모를 골탕먹이는 꼴이 되고 만다.

꼭 대입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대학에 학생선발의 완전한 자율성 부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최근 들어 실기시험 위주인 예.체능계를 제외하고는 입시부정은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들은 1, 2학기 수시에서 입학정원의 절반 정도를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면접으로 선정한다. 고교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이 같은 대학.학과를 응시해 불합격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채점결과 공개를 요구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대학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 정도면 입시과정의 투명성과 공평성이 대학사회에 착근하고 있다고 판단할 만하지 않은가. 더욱이 대학정원이 수험생보다 많은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선발을 꾀할 만큼 간큰 대학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고교의 학생 상대평가자료.등급제로 표시한 수능성적 등 자료만 제공하고 사용 여부와 방법은 전적으로 대학에 일임해야 한다. 대학들도 이제는 정부가 제공하는 전형자료와 지침을 금과옥조로 삼아 맹종할 것이 아니라 입시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 붕어빵식 선발제도를 버리고 독자적인 입시를 시행하지 않는 한 세계적 대학으로의 도약과 비상은 불가능하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