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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정치지도자에게 듣는다]1.제임스 울펀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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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일보 밀레니엄 특별기획 세계 주요 정치지도자.석학 연속 인터뷰 첫회로 유종일박사 (KDI 국제대학원 교수)가 미국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 제임스 울펀슨 총재를 만났다.

세계은행과 한국 정부가 오는 26~27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라는 주제로 개최할 국제심포지엄을 계기로 마련된 이 기획은 KBS와 공동추진됐으며 KBS는 20일 오후 10시40분부터 1TV를 통해 방영했다.

- 세계은행은 이달 말 한국 정부와 함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관한 국제회의' 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어떤 배경에서 국제회의가 열리게 됐나요.

"이번 행사는 지난 98년 2월 당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를 방문해 대화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기획된 것이지요. 그때 金당선자와 한국의 개혁문제, 즉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대략 1년 뒤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춘 국제회의를 개최하면 좋겠다는데 뜻을 모았지요. "

- 이런 국제회의 개최가 세계은행이 하는 일상적인 업무입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이전에 이같은 성격의 회의를 개최한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세계은행이 전세계에서 하고 있는 일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의 경험을 알리면서 다른 국가들과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다른 국가들에도 대단히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

- 총재께서는 최근 세계은행이 '돈을 꿔주는 은행' (loan bank)에서 앞으로 '지식을 나눠주는 은행' (knowledge bank) 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돈을 꿔주는 역할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금융기관으로서 수행할 수 있는 두 가지 역할, 즉 자원과 지식을 동시에 활용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자금 대출을 지식과 경험을 살리면서 할 수 있다면 훨씬 좋지 않을까요. 특히 우리 고객이 우리가 제공하는 자금뿐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겠지요. "

- 김대중 대통령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되는 시점입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펼쳐온 포괄적인 개혁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지난해 한국은 국내총생산 (GDP) 의 16%에 달하는 4백억달러의 흑자를 달성했으며 각종 경제지표에서도 긍정적인 진전을 보였지요. 불과 1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새 정부가 실로 엄청난 일을 했다고 봐요.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현재 진행중인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은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

- 세계은행은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어떻게 돕고 있나요.

"세계은행은 한국에 대해 1백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약속했었고, 3월말까지 70억달러의 지원이 마무리될 것입니다. 또 현재 한국 정부와 지원용도를 협의중인 나머지 30억달러도 올 7월 이후 집행될 예정입니다. "

- 한국 경제가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산업생산 증가와 주가지수 상승,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신용등급 상향조정 등이 대표적인 징조지요. 하지만 실업문제 등 아직 불안요인도 만만치 않게 남아 있어요. 한국 경제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요.

"경제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사정도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 경제는 5조달러 규모로 한국의 10배, 인도네시아의 20배나 됩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5천억달러에 달한다고 해도 세계경제의 큰 틀에서 보면 비교적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와 브라질의 경제위기에 따른 신뢰감의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모든 문제들이 국제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국가도 이번 경제위기를 무사히 넘길 것으로 보지만, 한국이나 태국.인도네시아처럼 엄청난 위기상황을 경험하게 되면 경제가 하루아침에 회복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가 올바른 노선을 걷고 있고 향후 한국의 시장경제가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기대돼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 한국의 금융위기는 이제 진정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하지만 실업과 빈곤과 같은 사회적 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안정 없이 안정적 발전을 계속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한국이 당면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1인당 GDP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빈곤이 악화됐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우리의 관심사는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인 평화와 안정이지요. 金대통령도 이 문제 해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세계은행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

- 한국의 새 정부는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이라는 새로운 정경분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도 북한의 경제개방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요.

"물론이지요. 세계은행은 1백80개 출자국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북한 문제와 같은 특정한 사안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유엔에서와 같은 의사결정 방식에 따라 일이 진행됩니다. 세계은행은 이미 지난해 북한에 인력을 파견해 북한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 金대통령께도 상의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 추진에서 한국 정부의 의견과 남북한의 대화의지를 존중할 것입니다. 또한 국제사회의 규범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한국 정부와 북한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틀 (framework) 안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 러시아.브라질, 그리고 일본 및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요인들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은행은 어떤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나요.

"위기가 발생할 경우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 (IMF) 과 함께 최대한의 금융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은행이 각국에 IMF보다 50%나 더 많은 금융지원을 해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경제구조를 튼튼하게 만들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위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이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기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세계은행은 IMF와 더불어 투명성 제고와 자금흐름의 감독강화 노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 아시아 금융위기와 관련해 관련국가들의 투명성 부족과 도덕적 해이 문제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 (LCTM) 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문제가 단지 아시아 국가들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지 않나요.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실수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최근 저축대부조합의 위기는 큰 사회문제가 됐었지요.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은행법도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위기가 발생했어요. 따라서 법률과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위기가 안오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해 아시아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느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실수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을 강화해 좀 더 투명하게 하고 사람들의 실수를 예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도덕적 해이의 경우 국제적으로 대출을 하건, 국내 대출을 하건 대출을 해준 기관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바꿔 말하자면 우리가 금융기관들을 강화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있을 위기를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잘 판단하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국제사회와 국내, 그리고 가족에게서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도 너무 많은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판단이 항상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니까요. "

◇ 울펀슨 총재는…

- 33년 호주에서 출생.

- 56년 호주 펜싱 국가대표로 멜버른 올림픽 참가.

- 57년 시드니 대학 법학과 졸업. 변호사개업.

- 59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

- 미국계 투자은행 살로먼 브러더스사장 등 투자자문회사 중역 역임.

- 80년 미국 귀화. 카네기홀 이사장. 수준높은 첼리스트.

- 81년 울펀슨 투자자문회사 설립.

- 95년 5월 영국 기사작위 받음.

- 95년 6월 세계은행총재 취임.

-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

- 프랑스 레종 도뇌르 등 훈장받음.

정리 =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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