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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이화여고 재도약 이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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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모교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봉사했다는 데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정창용(61·여·사진) 이화여고 교장은 31일 명예퇴임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 교장은 이화여고 재학생 시절 3년, 교사·교장으로 39년 6개월간 매일 서울 정동에 있는 교문을 드나들었다. 그는 “이제까지 한 번도 ‘이화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는데, 떠나는 오늘 내가 얼마나 이 학교를 사랑했는지 알겠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66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범대 가정교육과를 졸업한 뒤 모교로 돌아왔다. 공립학교 발령을 받았지만 사립인 모교에 자리가 생기자 이화여고를 택했다. 그후 고3 때 사범대 진학을 권했던 담임 교사와는 부부의 연을 맺었고, 정 교장이 가르쳤던 제자들을 동료 교사로 맞기도 했다. 한때 모교에서 교직 생활을 한 이경은 도서출판 파인앤굿 편집장은 “고1 담임선생님이던 교장선생님의 조언이 인생살이의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30년간 교단에 섰던 그는 2000년 3월 교장이 됐다. 교장공모제로 이화학원은 평교사이던 그를 교장으로 임명했다. 이화여고 123년 역사상 교감이나 대학교수 경력 없이 평교사에서 바로 교장이 된 것은 정 교장이 처음이었다. 교장 자격증이 없었던 그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장 직무대리 기간를 거쳐 9년 반 동안 학교를 이끌었다.

그가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화여고는 명문 여고 역사를 이어갈 변화를 주도했다. 74년 화재로 없어진 프라이홀을 복원해 공연장·과학실험실·카페 등을 갖춘 이화 100주년 기념관을 2004년 개관했다.

또 교사들을 해외 명문 사립학교에 한 학기동안 연수를 보내는 등 교사 연수를 강화했다. 신규 교사 채용 시스템도 바꿨다. 2001학년도부터 필기 시험과 수업 시연, 심층면접을 통해 교사를 공개채용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구도심 지역에 있지만 이화여고는 학생들이 찾아오는 학교가 됐다.

정 교장은 퇴임을 앞두고 또 한번 도전했다. 7월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자율형 사립고에 선정된 것. 정 교장은 2003년부터 자립형 사립고 전환을 준비했던 경험을 살려 국제어문·인문사회·자연·예체능 교육과정을 특성화하고 무학년제와 수준별 이동수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 교장은 “이화여고의 재도약 발판을 마련하고 떠나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정 교장의 퇴임식에 맞춰 이화여고생들은 “정창용 언니, 잊지 않을게요. 사랑해요”라는 현수막을 학교 앞에 걸었다.

2학년 허유림(17)양은 “편안한 언니, 이모처럼 먼저 인사를 건내시던 교장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정 교장은 “제자들에게 언니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인사를 받아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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