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손내밀고 YS는 뒷짐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DJ) 대통령이 김영삼 (金泳三.YS)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론' 을 꺼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DJ는 9일 저녁 부산.경남 출신 당정 고위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YS에 대해 '민주화운동을 함께 해온 동지' 라는 표현을 동원해가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평소 YS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낸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YS가 현 정부의 국정운영 행태를 '정권말기적' 이라고 비판하고 기자회견을 예고하는 등 선전포고를 한 마당이어서 다소 의외라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국민회의 관계자는 "DJ의 발언은 겉보기엔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상은 YS에 대한 강한 견제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이라고 풀이했다.

확전 (擴戰) 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부각시켜야 할 YS에겐 DJ의 '애정표시' 는 공격의 목표를 단숨에 빼앗아가는 고단위 처방이라는 것이다.

국민회의 노무현 (盧武鉉) 부총재 등 여권내 PK 인사들은 이미 DJ의 '예우론' 발언 이전에 "YS가 도발적인 자극을 해올수록 껴안는 것이 최선의 대응" 이라는 의견을 DJ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DJ의 YS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두 사람의 협조체제 구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DJ는 9일 만찬에서 "金전대통령으로부터 덕을 볼 생각도 없다" 고 했다.

YS가 중립적인 자세만 취해줘도 만족스럽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는 경제청문회에서 돌출한 'DJ계좌 불법 추적 및 왜곡발표' 사건에 대한 여권의 대응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과 국민회의 정균환 (鄭均桓) 사무총장.정동영 (鄭東泳) 대변인 등은 '단호한 대처' 를 공언했지만 내심으로 확전을 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YS책임론이 부각돼 큰 그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YS에 대한 위무 (慰撫) 작업은 물밑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정길 (金正吉) 청와대 정무수석이 상도동 방문을 타진중이고 국민회의 권노갑 (權魯甲) 전 부총재도 YS 설득에 동원될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은 상도동측이 25일 이후 갖겠다고 예고한 YS 기자회견이 무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 실정의 궁극적 책임자인 전직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하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