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직 판사의 사법부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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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원지법 문흥수 (文興洙) 부장판사가 법원 전산망에 법관 인사제도와 사법부 구성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실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직 법원 간부의 공개적인 사법부 비판은 이례적인 '사건' 인데다 구체적이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담고 있어 충격적이다.

文부장판사의 행동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자신의 소신을 과감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우선 평가할 만하다.

특히 언로 (言路)가 막히다시피한 지금의 사법부 체제에서 글이 게시된 지 하루만에 전국 법관의 80% 이상이 읽고 격론을 벌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고는 하지만 법조 개혁이 당면과제로 등장한 시점에 법관 신상 문제나 사법부 개선책에 대해 법관들끼리 의견을 모으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만한 점이 있다.

그는 10년 주기의 법관 재임명제도나 고법부장.대법관 등 발탁 승진제도가 법관의 인적 (人的) 독립을 막아 소신 판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얼마 안가 변호사가 될 처지인 법관으로서 전관 (前官) 변호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법원이 거물 변호사 양성소처럼 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상고이유서에 올라 있지 않으면 대법관들이 열심히 읽지 않는다는 설까지 나돈다고 주장했다.

법관 재임명은 6공 이후 2명이 탈락됐을 뿐일 정도로 제도가 법관들에게 주는 심리적 부담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져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었다.

또 법관의 발탁 승진제도의 문제점도 새삼스런 시비는 아니다.

그렇지만 법조계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시점이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되는 것이다.

사법부가 검찰처럼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산고법 판사 18명도 이 사건에 관한 의견서를 만들어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관행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것을 약속하지만 징계보다 대법원장이 국민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다.

이제 대법원은 각계각층의 모든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해 진정으로 신뢰받는 사법부가 될 수 있도록 개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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