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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직장내 성희롱문제를 넘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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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직장내 성희롱' 문제가 법제화되면서 작업장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달 6일 성희롱의 금지가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과 '남녀고용평등법 개정법' 에 각각 명문화됨과 아울러 구체적으로 예방지침까지 마련됨으로써 이제 강력한 법규범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동안 이러한 법규범이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직장내 남성과 여성간에, 그리고 사업주와 근로자간에 찬반에 관한 열띤 공방전이 벌어졌다.

먼저 법문항 자체로 보면 남녀 모두 성희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 될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성대결의 한 단면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입장에서는 직장내에서 성희롱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성희롱 행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할 경우 직장 분위기가 경색될 것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당초 성희롱 예방 지침에서 논란이 됐던 '특정 신체부위를 음란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행위' 를 성희롱에서 제외하는 등 모호한 부분을 삭제하려고는 했지만 남성 직장인의 우려가 말끔히 가셨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여성 입장에서는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직장 내에서의 성폭력 사례가 3백4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40.7% 증가했던 사실이 말해주듯이 우리나라의 직장내 성희롱문제는 위험수위를 이미 넘어섰다고 보고 강력한 제재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성희롱문제에 대한 남녀간의 인식차이와 함께 노사간에도 성희롱 금지규정에 대해 논란이 제기됐다.

먼저 노조는 여성조합원의 명분있는 요구에 따라 직장내 성희롱 금지규정의 입법화를 촉구하고 사용자측에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성희롱문제를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노사협의회를 통한 자율적인 해결방식을 주장하고, 특히 예방교육의 의무화와 함께 벌칙규정까지 두는 것은 지나친 기업규제 사례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성희롱 금지법은 성대결 뿐만 아니라 노사간에 커다란 인식의 차이를 수반해 입법과정에서 논쟁이 분분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장내 성희롱금지의 예방지침까지 마련된 이상 이제는 당초 본 법이 의도했던 바대로 바람직한 남녀공존의 직장문화가 정착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성별.노사, 그리고 사회 모두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고와 행동양식이 재정립되도록 공동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먼저 남성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선진국 수준까지 이르고 있음을 유념해 직장내에서 여성인력을 남성과 대등한 동반자관계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 측면에서는 어찌됐든 성희롱금지법은 여성의 손을 들어준 것임을 부인하지 못할진대 여성의 과감한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고 하겠다.

직장내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선 여성 자신이 상응한 책임분담과 역할균등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최근에 급속한 여권신장 과정에서 우려되는 역차별문제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본다.

지난 80년대 남녀고용평등법이 입법화되면서 일시적으로 기업의 여성고용이 감소됐다는 점이 여성운동 측면에서 고려돼야 할 것이다.

한편 노사간에서도 노측은 성희롱과 관련해 사소한 문제까지 법으로 해결하려는 것보다는 직장내 고충처리제도를 활용해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희롱문제가 법적으로 비화돼서는 결국 해당 근로자가 직장에서 계속 일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고 사후에는 직장내 원만한 해결방안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측의 사전예방교육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또한 성희롱문제가 노사협의회가 결성되는 중규모 이상의 기업보다는 5인이하 소규모 업체에서 보다 심각한 상태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업주의 도덕성 제고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마지막으로 성희롱문제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가 변해야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성교육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건전한 성도덕이 함양돼야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직장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성희롱법은 단순한 직장내 규범을 넘어 우리 사회 양성 (兩性) 평등의 새로운 가치관형성에 전기가 되도록 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부여되고 있다.

宣翰承 한국노동연구원연구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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