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 울리는 병원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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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외국제 고가 의료장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값을 부풀려 비싸게 사주는 대가로 대학병원장이 억대의 리베이트를 받는가 하면 대학총장은 병원장으로부터 거액을 상납받아 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인술 (仁術) 을 가르치는 대학병원에서 부정과 비리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구속된 조선대 병원장 최봉남씨의 경우는 의료업계에서 전형적이고 관행화된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대병원이 독일 지멘스사로부터 컴퓨터단층촬영기.혈관조영촬영기.암치료기 등 3백30만달러 (약 40억원) 상당의 의료기기를 도입하는 것을 이용해 崔병원장은 값을 올려주고 한번에 8천만~1억2천만원씩 받아온 혐의다.

병원측과 납품업자가 서로 짜고 공개입찰을 고의로 유찰시킨 뒤 수의계약을 맺으면서 2억4천만~3억7천만원씩 비싸게 납품받고 차액 중 일부를 병원장이 리베이트로 가로챘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충북대병원장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었다.

병원 비리는 진료비 인상이나 병원비 바가지로 둔갑해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부담이 돌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가뜩이나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를 두번 울린다는 점에서 다른 부정부패사건보다 더욱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또 리베이트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외국 의료기 회사 몫으로 돌아간다면 이는 국부 (國富) 의 해외유출이기도 하다.

병원 외제 고가장비 도입의 국내시장 규모는 연 1천억원대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붐이 일면서 수요가 급증하게 되자 판매경쟁도 치열해졌고 이같은 뒷거래가 성행하게 됐다.

외국업체를 경쟁시켜 보다 싼 값으로 우수한 장비를 들여와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는데도 오히려 사복 (私腹) 채우기에 급급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병원의 고가 의료장비 구입경쟁은 소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병원측에 따르면 값비싼 장비를 최선의 진료로 여기고 이를 갖춰놓지 않으면 환자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별 필요도 없는 장비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빚을 내 들여놓기 일쑤라고 한다.

이는 결국 병원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환자들에게는 바가지요금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의약품 납품과 장비 구입을 둘러싼 리베이트 비리는 대형병원의 고질이 됐다.

과거에는 관행으로 통하던 일도 이제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병원측이 자율적으로 이같은 악습에서 탈피하도록 먼저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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