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당국자회담 앞당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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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북남고위급 정치회담' 을 제의해 왔다.

이번 제의는 북한이 지금껏 연례적으로 남한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에게 보내 왔던 선전공세적 제안과는 의미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한다.

회담 주체로 '정부' 를 먼저 들고 있고 의제에 교류협력과 이산가족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의 회담 실현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북의 이번 제의는 우리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에 대한 하나의 화답신호라 보고 남북 당국자간 회담이 하반기 아닌 상반기 중 이뤄지기를 촉구한다.

남북 쌍방이 상반기 중 해결해야 할 긴급한 사항은 두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금창리 핵의혹 시설에 대한 사찰이고, 또 하나는 북의 식량난 해결을 위한 남쪽의 비료지원과 맞물린 이산가족 상봉문제다.

북 - 미간 금창리 협상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두차례 사찰 허용과 식량지원으로 의견이 좁혀지는 듯하다.

사찰시점도 3월 또는 4월이다.

상반기 중 의혹시설 사찰이 끝나면 남북간 막힌 벽은 일단 허물어진다.

굳이 하반기까지 갈 것 없이 당국자간 고위급 정치회담은 곧장 열 수 있다.

북한쪽으로선 우선 시급한 게 비료지원이다.

올해 농사를 제대로 짓자면 시비 (施肥) 철인 4월을 넘길 수 없다.

주는 쪽에서도 적기에 맞춰 지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3월중엔 비료지원을 위한 당국자간 회담이 열려야 한다.

이미 우리 정부도 비료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뭘 바라서 주는 게 아니라 기왕 당국자간 회담이 열린다면 이산가족문제는 남북 공동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의 이번 제의에도 명시돼 있듯 이산가족문제는 남쪽만의 고통이 아니다.

남과 북이 함께 논의, 해소해야 할 남북 공통의 분단 비극이다.

비료를 주니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하라는 압박이 아니라 남과 북이 당면하고 있는 이산의 슬픔을 어떻게 풀 것이냐를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이번 고위급 정치회담 제안에서도 예년과 똑같은 전제조건을 붙이고 있다.

한.미군사합동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한총련 같은 '통일애국인사 단체' 의 활동보장 등의 조처가 취해져야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합동훈련이 공격용이 아닌 평화유지를 위한 방위훈련이고 국보법은 북이 간섭치 않아도 우리 내부에서 해결할 치안관련법이다.

또 한총련 같은 단체가 폭력시위를 하지 않는 한 탄압받을 하등 이유도 없다.

북이 이런 실상을 몰라서도 아니면서 천편일률적으로 이런 사항들을 회담 전제조건으로 붙인다는 것은 난센스일 뿐이다.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만나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에 도움이 될 실천적이고 가능한 일부터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 첫 시작을 비료지원과 이산가족문제로 잡고 남북당국자 회의를 3월중에 열어야 한다.

지난해 4월 베이징 (北京) 회담처럼 명분에 사로잡힌 줄다리기로 치닫지 말고 실현가능한 사항부터 풀어가는 실무형 남북회담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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