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파동]불길 잡힌 '연판장 파문' 앞으로의 방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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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사들의 집단행동 파문은 일단 '진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물론 '상처만 남긴 채' 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불붙던 반발의 기세가 꺾인 건 대검에서 열린 전국 차장.수석검사 회의에서다.

3일 오전 2시 끝난 회의장을 나서는 평검사들의 표정은 밝았다.

"결론은 별개로 하고라도 할 말을 원없이 다해 속이 시원하다" 는 게 중론이었다. 회의를 끝낸 이원성 대검차장과 다른 대검 간부들은 초주검이 된 상태였지만 마음은 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태가 진정됐다는 사실은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문에 잘 드러난다.

검사장.차장검사 등 간부들이 퇴장한 상태에서 평검사 대표끼리 작성한 문안은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고 돼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런 결과는 예측하지 못했다" 고 털어놓았다.

"이번 사태를 하루속히 마무리한다. 그러나 용퇴 문제를 포함한 모든 결정을 수뇌부에 맡긴다" 는 정도의 결의문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검사 대표들은 '金총장 중심으로 일치단결'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퇴진요구 움직임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대표들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니 만큼 일선 검사들도 일단 승복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평검사 대표들의 이런 결정은 여러가지 고려와 고심 끝에 나온 것 같다.

가장 핵심적인 논리는 "우리 손으로 검찰총장 임기제를 흔들면 앞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온다" 는 것이다.

한번 전례가 만들어지면 재야나 시민단체, 또는 정치권에서 총장 사퇴를 요구할 때 방어논리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과거에도 몇차례 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검사들이 스스로 임기제를 파괴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을 이루려면 오히려 검찰총장을 보호해야 한다" 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점차 힘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번 검찰 파동은 金총장 사퇴 여부와 관계없이 검찰 내에 크나큰 상처를 남겨놓았다.

내부의 치부를 다 드러낸 측면도 있다.

현직 고검장이 "검찰은 인사 때만 되면 정치권에 줄을 대고 인맥을 형성하느라고 혈안" 이라는 취지의 폭로를 한 마당이다.

또 평검사 회의에선 "인사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는다 해도 과거엔 그나마 원칙이라는 게 있었는데 이젠 그것마저 없어졌다" 며 이를 현 정권의 지역성과 연관시킨 발언도 나왔다.

따라서 검찰 수뇌부로선 이같은 불만을 무마하고 흩어진 '검심 (檢心)' 을 추스르는 작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됐다.

그에 대한 첫 시험대가 바로 이번 인사다.

金총장은 3일 측근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지역색과 학연.인맥을 배제한 능력 위주의 공정한 인사를 하겠다" 고 다짐했다고 한다.

만일 이런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또다시 검찰 조직이 동요하게 되면 그때는 만약 (萬藥) 이 불능인 상황이 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검찰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점이 노출됐다.

상명하복 (上命下服) 의 원칙은 불만이 속으로만 누적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검찰 수뇌부는 앞으로 이번 같은 평검사 회의를 정례화할 방침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세워나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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