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지연·학연 기록 삭제, 이후를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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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준규 검찰총장이 어제 대검찰청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사들의 출신지와 출신학교 기록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법조인대관과 인터넷 인물정보 등에 대해서도 삭제를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 인사 관행이 지연과 학연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검사의 능력과 인품을 최우선하는 인사 원칙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우선은 환영할 만하다. 검찰의 고질적 병폐인 권력 바라보기 역시 지연과 학연에 얽매인 인사로 왜곡된 조직문화에서 그 병인(病因)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신임 총장에게 기대한 것이 바로 개혁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연·학연 기록을 뺀다고 해서 뿌리깊은 관행이 금방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바람을 검찰 내부에 불어넣을 수는 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는 건 순서가 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자칫 단편적 또는 일과성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벤트를 앞세우다 보면 오히려 믿음을 못 주고 조직의 신뢰도만 훼손할 수 있다. 검찰의 권위주의적 요소를 없애는 건 중요하지만 집무실에서 소파를 치운다고 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먼저 정치권력에 줄을 서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수사방향을 정하며 교묘하게 언론플레이를 해왔던 과거의 잘못된 수사관행에 대해 반성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 노력 없이 무작정 인적 정보 기록만 없앴다간 오히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은닉’ 행위가 되기 십상이다.

그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김 총장의 약속대로 검찰 인사가 지연과 학연의 굴레에서 벗어나 능력과 성실성으로 갈음되는 인사가 되려면 총장 스스로 권력에서 독립해 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공염불일 뿐이다. 김 총장이 성공한다면 후임자 역시 뒤집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이 학연과 지연을 탈피한 조직문화 정착에 성공한다면 그것이 우리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