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 강경식씨 증인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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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일 경제청문회는 97년 7월로 시계추를 돌렸다.

부도위기에 몰린 기아가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간 것은 7월 15일. 기아에 대한 법정관리와 산업은행의 출자결정이 발표된 날은 그해 10월 22일. 조사특위는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 하락의 결정적 계기로 기아의 늑장처리를 꼽고, 왜 그토록 늦게 법정관리로 갔느냐고 강경식 (姜慶植) 전 부총리를 닦달했다.

그러나 姜전부총리는 당시 부도유예협약이 2개월이었던 점, 기아의 갑작스런 화의신청 (9월 22일) , 당시 기아 부도를 반대했던 여론 때문에 기아처리를 신속하게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루한 공방이 되풀이됐을 뿐 추가 사실확인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짜증난 의원들의 힐난조 질문이 거듭됐다.

(괄호안은 질문자)

- (어준선.자민련) 부도를 막자고 부도유예협약을 만들었지만 협약은 실제 부도를 촉진하는 역작용을 낳았고, 이는 금융권 부실로 이어져 신인도 하락으로 외환위기를 가져왔다고 보는데.

"협약 때문에 외환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협약과 관계없이 그 당시 상황은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하게 돼 있었다. "

- 그해 9월 법정관리 결정을 해 대통령께 건의할 정도가 됐으면 경제수석을 통해 대통령을 설득해 부도유예기간중이라도 결단내렸어야 하지 않나.

"협약기간중에는 할 수 없다. 당시 정부입장에선 채권단과의 협약을 파기하면서 그렇게 하긴 어려웠고, 기아노조의 반발 등 사회적 파장 등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나. "

- 9월 29일이 협약만기인데 왜 10월 22일까지 끌었나.

"기아가 채권단과의 합의를 깨고 9월 22일 일방적으로 화의신청을 했다. 그것이 결말나야 법정관리로 갈 수 있었다. "

- (장성원.국민회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기아를 부도처리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게 기아처리 장기화의 원인이 됐다고 보는데.

"金전대통령은 법정관리로 가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

- 왜 대통령에게 기아의 경우 부채가 많아 부도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나.

"여러번 보고드렸다. "

- 기아가 4조5천억원에 달하는 분식결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나.

"몰랐다. 알았다면 처음부터 대응이 달랐을 것이다. "

- (정세균.국민회의) 당시 8월 25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을 때 일부 대기업의 부도사태와 일부 금융기관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때 상황인식이 정확했나.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

- 당시는 응급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외화 이탈을 방지하고 정부차원에서 외화차입 노력을 그때 했어야 한다.

"채권시장 개방.증시대책 등 사흘이 멀다 하고 대책을 내놓았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계속 돈을 빌려왔다. "

- (정우택.자민련) 그해 10월 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한 회의때 종금사와 은행장들에게 화의에 동의하지 말라는 압력을 가한 것이 사실인가.

"(채권단이)가부를 빨리 표명해야 화의개시 여부가 결정나기 때문에 서둘러 회신을 하라고 한 것이다. 그걸 두고 직권남용이란 혐의를 받고 있는데 재판결과가 나와 보면 안다."

- 그해 10월께 21세기 국가과제를 주제로 지방순회강연을 다니면서 구조개혁에 신경을 썼다. 왜 단기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나.

"우리가 IMF로 간 것은 신용을 잃어서다. 한국이 문제를 제대로 고치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 때문이다. 당시 21세기 과제 추진은 신용을 얻기 위한 조치였다."

- 기아가 표적성 여신회수와 삼성음모설 등 외부요인으로 몰락했다는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삼성음모설 등은 어불성설이다. 기아가 당시 분식결산을 얼마나 했고, 적자가 얼마였는지 다 드러나지 않았느냐. 그런 설에 대해선 아는 바 없다."

- (천정배.국민회의) 9월 29일 부도협약이 끝났는데 왜 곧바로 법정관리 신청을 하지 않고, 한달이나 끌었나.

"기아가 채권단과의 합의를 깨고 협약 만기 1주일 전 일방적으로 화의신청을 했다. 그것이 결말나야 법정관리로 갈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곧장 법정관리로 갔으면 노조 여론 등에서 가만히 승복했겠나."

- (김영환.국민회의)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면 IMF로 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나.

"당시엔 신용위기라고 생각했다.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면 신용이 어느 정도 회복돼 IMF로 안가도 될 줄 알았다. 나중에 일본이 국내사정으로 11~12월 두달 동안 70억달러를 회수한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신용이 아무리 회복돼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상렬.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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