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눈으로 본 '작가 손창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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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소설가 손창섭(1922~ )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독특한 작가 중 한사람이다. '혈서''미해결의 장(章)''잉여인간' 등 대표작들을 썼던 1952년부터 61년까지가 전성기였다. 그가 61년 '자화상'이라는 꼬리를 붙여 발표한 자전적 중편소설 '신(神)의 희작(戱作)'은 충격적인 내용으로 문단을 놀라게 했다. 평론가 유종호가 '이상(異常) 심리학 교과서'라고 평할 정도였다. 하지만 손씨는 신문연재 소설 '봉술랑'을 끝으로 붓을 접고 78년 가족들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간 후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 조두영(67)씨가 최근 펴낸 '목석의 울음'(서울대학교 출판부)은 작품분석을 통한 '작가 손창섭 들여다보기'다.

조씨는 역시 '신의 희작'을 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무의식적 자료가 빽빽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작가 S는 어머니로에게서 성적 학대를 받은 데 이어 어머니와 외간 남자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다. 그런 정신적인 외상은 차츰 야뇨증, 강간도 불사하는 폭력성 등으로 나타난다.

조씨는 학계에 보고된 정신분석 사례를 소상하게 소개한 후 S의 심층에 피학성.관음증.가짜 공격성.노출증.과대 의식 등이 웅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S의 반복적인 여성 강간은 여성 성기에 대한 두려움이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으로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분석 과정 자체가 흥미를 자아낸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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