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미국 소형차시장, 반짝 인기냐 대세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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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미국 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소형차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유가로 소형차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차를 선호하는 미국인의 성향 등을 감안하면 소형차의 인기가 조만간 꺾일 수 있다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BW)는 27일 “유가가 안정되면 소형차 시장에서의 경쟁이 ‘승자 없는 싸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BW와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자동차 회사들은 최근 앞다퉈 소형차 신모델 출시를 준비 중이다. 폴크스바겐의 아우디는 올해 연비가 L당 17㎞에 이르는 소형차 ‘A3’의 디젤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GM의 캐딜락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소형 모델인 ‘캐딜락 ATS’의 출시를 준비 중이고, 도요타의 렉서스는 다음 달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새로운 소형 콤팩트카를 내놓을 예정이다. 앞으로 18개월 내에 미국에서 등장할 소형차 신모델만 9종이나 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돈나 볼랜드 대변인은 “가치와 절약을 강조하는 쪽으로 시장 환경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유가 상승으로 기름을 덜 먹는 고연비 차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데다 경기 침체 여파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진 영향이 크다. 실제 최근 미국 정부가 신차 구입 시 최대 4500달러의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펴면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도요타의 코롤라와 포드의 포커스 같은 소형차였다. WSJ는 “10년 전 주택가격이 치솟고 주가가 오르면서 대형 고급 차량을 선호했지만 이젠 취향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소형차 운전자를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컨설팅 업체 카랩의 에릭 노블 대표는 “무엇보다 사람들은 소형차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소형차 판매가 ‘반짝 인기’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유가가 오를 때면 소형차 판매가 늘어났지만 유가가 다시 내려가면 판매량이 원위치로 돌아가곤 했다고 BW는 전했다.

특히 미국 자동차 시장은 소형차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다. 5만 달러짜리 차량을 팔면 1만 달러 정도가 남지만, 2만 달러짜리를 팔면 몇백 달러 정도밖에 챙기지 못한다. 소형차에 대한 수요가 지금처럼 유지돼야 돈이 남는다는 의미다. BW는 “소형차 구매자들이 줄어들면 치열한 가격 싸움에 돌입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소형차 생산 업체들이 큰 손실을 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단 자동차 회사들은 소형차의 고급화로 대비책을 마련 중이다. 불티나게 팔렸던 BMW의 ‘미니쿠페’처럼 디자인과 첨단 기능을 접목시키면 소형차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다. 포드는 포커스와 피에스타 신모델에 핸즈프리·내비게이션 등의 기능을 갖춘 첨단 장비를 장착했고, 기아차는 위성라디오와 길 안내 서비스 기능을 갖췄다. GM도 승차감과 편의성을 높인 뷰익 콤팩트 신모델을 준비 중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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