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FRB의장 '미 증시에 거품 조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미국 증시가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20일 (현지시간) 경고하고 나섰다.

그린스펀 의장은 미 하원 세출위원회 연설을 통해 "기업 실적 둔화에도 불구하고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증시의 활황세가 지속되기는 힘들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증시가 폭락할 경우 소비를 위축시켜 실물경제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해 미국 경제는 고성장.저인플레.저실업률의 이례적인 성장세를 보였으나 "올해는 적절한 성장 둔화가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특히 브라질 금융 위기는 미국의 무역 적자 확대, 신흥시장의 금융 불안 가중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금리를 인하할 만한 경제 지표의 변화는 없다" 고 밝혀 당분간 금리 인하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린스펀의 증시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날 미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0.2%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이는 그린스펀의 발언이 그간의 입장을 재확인한 수준에 그친데다 발언의 강도도 약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시아에서도 그린스펀의 발언과 중국의 금융불안 가중이 맞물리면서 홍콩 증시가 2.6% 하락하고 한국 증시가 폭락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승세를 보여 직접적인 '그린스펀 효과' 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 금융계는 이번 그린스펀의 발언을 최근 급등세를 보인 증시 때문에 "호황이 지속될 것" 이란 분석이 고개를 드는 데 대해 FRB가 유권 해석을 내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3% 성장을 유지하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성장 둔화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올해 미국 경제의 최대 과제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한 것이다.

이번 발언에도 불구하고 주가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그린스펀은 28일 있을 미 상원 예산위원회 연설에서 발언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19일 국정연설에서 밝힌 경제운용 방안에 대해 그린스펀이 이견을 피력해 갈등이 예상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재정흑자의 일부를 증시에 투자해 그 수익금으로 사회보장을 강화한다는 클린턴의 구상에 대해 "수익률이 그리 높지 못할 것" 이라며 오히려 연방정부의 부채 상환에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으며, 수입 철강에 쿼터를 부여하는 등 보호정책을 펴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