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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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제7장 노래와 덫

형식이가 한씨네 행중을 따라 남도지방으로 떠난 이후, 변씨와 차마담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밀착의 강도가 돈독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구체적인 무엇을 저질러야 한다는 강박감까지도 거뜬히 수용할 태세까지 갖출 수 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바람직한 모양새는 바로 동거 (同居) 였다. 물론 두 사람은 진작부터 이심전심으로 그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 동의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 이면에는 변씨에 대한 차순진 마담의 피땀어린 어떤 노력이 주효한 때문이었다. 그 은밀하고 파격적인 내막의 진전을 시시콜콜 알 수는 없었지만, 늑골 깊숙한 뒤쪽으로 숨어 버렸던 변씨의 성욕구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던 것은 분명 차마담의 숨은 개가였다.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로써 동물적이거나 물리적인 장애는 해소된 셈이었다. 이제 남아 있는 절차는 늘그막에나마 신접살림을 차리는 것이었다.

신접살림은 바로 차순진씨가 화장그릇을 싸들고 변씨의 집으로 입성하는 것을 뜻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화장그릇 한 가지밖에 없었던 차순진씨로선 그 입성에 장애 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에서 변씨가 보여 주는 태도가 뜻밖에도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차순진씨는 입보다 눈으로 말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눈으로 변씨를 졸랐다. 졸랐다고 말했지만 압력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변씨는 속시원하게 "우리집으로 들어가자" 라는 한 마디를 시골아이 콩사탕 빨듯 아끼고 또 아꼈다. 차마담이 보았을 땐, 전혀 거리낌이 없을 것 같은 대목에서 변씨는 주춤거리고 있는 셈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변씨 역시 차마담과 살고 싶었다. 살고 싶다는 지고지순한 욕구에 전혀 군더더기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결행하려 했을 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장애는 없었으나 뭔가가 그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구애가 없었기에 변씨 자신도 목메도록 안타까웠다. 단도직입적인 평소의 변씨다운 태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에 얽매여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안방을 대충 걸레질하고 하룻밤 자고 나서 이튿날 아침, 차마담이 좁은 뜨락과 부엌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이웃들이 목격하고, 그들과 마주친다 하더라도 외면해 버리거나 열적게 몇 번 웃고 나면 그럭저럭 현실로 굳어지면서 운신의 폭도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이웃에서도 적지 않게 벌어져 온 일이란 것을 변씨도 몇 번 경험한 터였다.

게다가 변씨로선 입정 사나운 이웃들의 눈총 따위를 일찍부터 두려워했던 적도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그 나이에 귀쌈이 새파란 젊은 여편네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우쭐했으면 했지, 주눅들 건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변씨가 그런 하찮은 장애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오래 전 제 발로 걸어서 집을 나간 아내에게 미련을 두고 있는 탓일까. 곰곰이 생각을 했었으나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한때는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철규와 합세하여 강원도 일대를 뒤지고 다녔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찾아서 집으로 데려와 이미 버린 휴지조각처럼 찢겨져 꿰맞출 수 없는 결혼생활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옹골찬 꿍심에서라기보다 무작정 찾아내야 한다는 동물적인 충동에 부대낀 것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뭉그적거림이, 또는 휴지 없이 화장실을 다녀온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미진함이 바로 제 발로 집을 나간 아내 배말자 (裵末子) 씨 때문이었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 증거를 제공한 사람도 그녀였고, 그 증거를 가지고 나타난 것도 바로 배말자씨였다. 그렇게 수소문을 했어도 머리 하나 보이지 않게 은신하는 데 성공했던 그녀가 주문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철규네가 부곡온천에 도착했던 바로 그 날이었다.

차마담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갔던 밤 10시에 배말자씨는 집 툇마루에서 떨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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