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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방주의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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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다수 유럽인은 공개적으로 존 케리를 응원한다. 이들은 케리가 헤르메스 넥타이를 매거나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을 보며 흐뭇해한다. 반면 조지 W 부시가 오는 11월 2일 미국 대선 때 백악관에서 쫓겨나기를 바란다. 이들은 지난 4년간에 걸친 미국과의 문제가 구조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부시를 제거하면 대서양 상공에 서광이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혼동함으로써 유럽인들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 간의 문제 중 부시의 탓은 20~3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케리가 당선되면 그는 외교적 말투로 동맹국들을 다독일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제스처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란 어떤 것인가. 다섯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냉전의 종식(end of the Cold War)'이다. 그 결과 전략적인 의존도가 수직 하강했다. 소련이 사라지자 유럽은 미국의 보호가 불필요해졌다. 워싱턴을 깍듯이 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똑같은 이유로 미국도 서유럽의 필요성이 떨어졌다. 워싱턴은 러시아가 중부 유럽에서 철군하기 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 서유럽에 '임대료'를 지불해 왔다. '임대료'란 유럽의 욕구와 자부를 지켜주는 협력과 타협이었다. 이제는 임대료를 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상호의존이 끝난 것이다.

미국과 동맹국 간의 관계 파괴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9.11 사건이다. 냉전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른다면 이슬람 테러리즘의 맹공은 제4차 세계대전이다. 투쟁은 전 세계적이다. 과거 두 차례의 세계대전처럼 범위가 전 세계적일 뿐 아니라 목적도 전면적이다. 목적은 '십자군'을 내쫓는 것에만 있지 않다. 이슬람에 의한 전 세계적 승리를 노린다.

목표는 우선 미국이다. 유럽은 미국만큼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으로 인식하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다. 서로 다른 렌즈를 통해 세계를 보고 있다. 힘의 차이도 존재한다. 위협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용 가능한 충분한 국력 등을 믿고 미국은 힘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의 방위 부문 지출은 감소 추세다(영국과 프랑스는 예외). 사실 유럽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개입할 곳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가장 극적인 차이다. 유럽은 국제적인 협력과 타협, 그리고 제도를 믿는다. 또 무력에 혐오감을 표시한다. 유럽이 20세기 초반 가장 폭력적인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케리도 이 같은 근본적인 견해상의 차이를 좁히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국제기구에 권한을 위임하기보다 자신이 선택권을 갖고 싶어할 것이다. 즉 미국의 일방주의는 미국의 웅대한 전략의 한 특징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다. 케리가 당선돼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라크에서 철군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매우 다른 성질의 동맹'을 조직해 치안 유지의 짐을 미국에서 유럽의 어깨로 옮기려 할 것이다. 이는 반가운 일은 아니다. 아랍에 비교적 우호적인 유럽인들은 미국의 중동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 케리가 부시와 마찬가지의 열정을 갖고 수행하려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기를 꺼린다.

실제 케리가 당선된다면 유럽인들은 아마 부시가 계속 집권하는 게 나았을 텐데 하고 후회할 것이다. 부시는 유럽에서 경멸시되는 인물이다. 그에게 "아니오(No)"라고 말하는 것은 쉬웠다. 베를린과 프랑스는 케리가 백악관에 입 성하더라도 계속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이 헤르메스 넥타이를 매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론 부시 시대에 그토록 유럽인들을 격분시켰던 그 똑같은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과연 그때도 미국에 반대하고 또 미국을 욕할 수가 있을까.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유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