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미녀와 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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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뮤지컬 '미녀와 야수'는 놀라움과 아쉬움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동화를 무대화할 때 관객들은 놀랐고, 그 무대가 심장을 찌르지 못할 때 객석은 아쉬워했다.

우선 애니메이션을 통해 눈에 익었던 캐릭터들이 펼치는 생동감은 기발했다. 촛대와 시계를 비롯해 주전자.찻잔.화장대 등이 스크린을 확 찢고서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나온 듯했다. 평면적인 캐릭터는 "쉬~익!""쉬~익!"하며 숨까지 몰아 쉬었다. 인간에서 한 발짝씩 물건으로 바뀌어가는 처지. 존재에 대한 두려움까지 꼬옥 안고서 말이다.

디즈니가 외는 주술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왕자는 순식간에 야수로 돌변했고, 야수는 또 거짓말처럼 왕자로 변신했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도 '일급비밀'로 취급됐던 부분이다. 야수와 가스통이 벌이는 성벽 위의 결투도 볼거리다. 레이저빔을 이용한 조명이 진짜 폭우처럼 무대 위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녀와 야수'에서 마술과 조명은 짭짤한 양념 구실을 했다.

조정은은 청량한 목청으로 순수하고 착한 벨을 무대 위에 되살렸다. 오페라 무대에도 섰던 현광원의 굵직한 바리톤은 야수의 울부짖음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다만 대사를 내뱉을 때는 다소 가볍게 느껴졌다. 아랫배에서 소리를 끌어올리는 연극적인 발성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일까.

미녀는 당돌함 대신 깜찍함으로, 야수는 카리스마 대신 친근함으로 승부를 걸었다. 걸쭉한 감동이나 삶에 대한 진정성을 기대한 관객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동화적인 팬터지에 눈높이를 맞춘 관객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몇 차례의 프리뷰를 거쳤음에도 '미녀와 야수'는 나사를 좀 더 조여야 할 듯하다. 원작의 유머는 아직도 잠들어 있고, 디즈니의 공식에 기계적으로 대입된 배우들은 좀 더 살냄새를 풍겨야 했다. '미녀와 야수'는 6개월간 이어지는 장기 공연이다. 선보인 게 '100% 완제품'이 아니라면, 더욱 깎고 다듬어야 한다. 서울 LG아트센터, 4만~12만원, 02-2005-0114.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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