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의 홍콩에세이]홍콩 경찰의 '용기있는 고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홍콩 경무처 (警務處)가 11일 '채무이행 불능 경찰관수 증가 (無力環債警務人員人數回升)' 란 제목의, 좀 색다른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해 상반기중 빚을 갚지 못한 경찰관 수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0%나 늘어났다는 것, 그리고 빚을 진 이유는 ^경제불황으로 인한 투자실패^빚보증.사행 행위로 확인됐다는 것 등 두가지였다.

경무처는 지난 94년부터 매년 두차례씩 실시한 '빚쟁이 경찰관' 현황표를 첨부하면서 올해의 1백7명은 95년 상반기 이후 최대 규모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수도 있는 보도자료다.

그러나 이 자료는 홍콩 경찰이 왜 시민들의 믿음과 사랑을 받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경찰관이 빚쟁이여서는 업무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도박꾼이라면 아예 자격미달이다.

따라서 이런 내용은 시민들이 알아야 할 사항이긴 하다.

그러나 경찰당국이 앞장서서 '자체 빚쟁이 자료' 를 조사하고 공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입법회가 요구한 것도 아니다.

쩡인페이 (曾蔭培) 경무처 부처장은 자료 발표 직후 "빚은 수뢰와 이권개입으로 나가는 첫 걸음" 이라고 말한 점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빚조사는 자정 (自淨) 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자료를 공개하면 우선 시민들의 믿음을 얻는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3만명의 홍콩 경찰중 1백여명만이 빚쟁이라는 얘기는, 뒤집어 말하면 "조사해보니 대부분은 건전한 봉급 생활자" 라는 선전도 된다.

우리 경찰청도 새 청장 취임을 계기로 '빚쟁이 경찰관' 을 조사해보면 어떨까.

진세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