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최규장著'언론인의 사계'-기자 40년 체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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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손에 잡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지 않고는 못배길 그런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나는 재미 언론인 최규장씨가 쓴 '언론인의 사계 : 세계화 기자 40년 체험기' (을유문화사.9천원) 라는 책을 통해 그런 행운을 만끽했다.

이 책은 재미, 의미, 알맹이라고 하는 3박자가 모두 갖춰져 있다. 저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인생 역정이 재미있다.

이름을 날리는 기자로 맹활약을 하다가 유신 체제의 등장으로 언론 자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저자는 "유신과 싸워 펜을 지킬 만큼 강하지 못했고, 언론의 맑은 새날이 오리라는 것을 내디보리만큼 현명하지 못해 유신과 M&A를 했다" 고 말한다.

그러니까 유신 정권에 관료 (외교관) 로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리석게도 (?) 출세욕이 없는데다 언론인의 기개를 버리지 못해 결국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되돌아간다.

자기 미화나 정당화를 시도할 법 한데 시종일관 겸손한 어조로 담담하게 자신의 40년 세월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게 오히려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저자가 유신과 M&A를 하기 전 한국 언론의 현실에 대해 고뇌하며 관훈클럽에서 발행하는 '신문연구' 72년 봄호에 기고한 '한국 기자의 자화상' 이라는 글은 오늘의 언론인과 언론학도들이 꼭 읽어야 할 명문 (名文) 이요 귀중한 사료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이 글을 읽다보면 우리 언론의 구태의연함이 가슴을 아프게 내려친다. 이 책엔 저자만이 알고 있던 역사의 '특종 (特種)' 정보가 풍부하다.

국가 PR을 위한 저자의 탁견도 돋보인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재미교포 언론인의 모임인 '재미한국기자협회' 의 탄생을 위해 저자가 산파역을 맡은 것도 그런 탁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언론의 IMF사태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국가 PR과 우리 언론의 세계화를 위한 교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어느 기자의 일생' 에서 이 책의 가치를 더 진하게 음미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지간히 언론을 비판하는 사람이지만, 별정권 다 거치며 산전수전 (山戰水戰) 다 겪은 그들의 치열한 삶을 어찌 감히 비아냥댈 수만 있겠는가.

강준만 교수

<전북대 신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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