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우 한국도 1000만 명 감염, 1만 명 사망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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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적으로 신종 플루 환자 1000명당 1∼4명꼴로 사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역학 전문가의 이론적 추정에 따르면 한국도 전 국민의 20%(1000만 명)가 발병해 0.1%(1만 명)가 사망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중증 환자 발생을 줄이고, 예방 백신을 빨리 공급해 사망자를 최대한 줄이는 노력이 시급하다.”

신종 플루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신영수(66·사진)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지역 사무처장은 21일 베이징(北京)에서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북반구의 가을철 개학을 맞아 신종 플루가 대유행(pandemic)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신종 플루에 대한 공포감이 다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번 신종 플루는 전파력이 아주 빠른데 인류는 아직 면역력이 없다.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하든 신종 플루 바이러스는 제 코스를 갈 것이다. 1차 파동에 이어 2차 파동이 곧 올 것이다. 세계 인구의 최대 66%까지 감염돼야 면역력이 생겨 저절로 끝난다는 전망도 있다. 타미플루로 차단하고 백신으로 예방하면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방역 노력만 의존해선 안 된다.”

-가을과 겨울이 되면 더 위험한가.

“북반구가 가을철로 접어드는 2차 파동에선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1차 때는 검역으로 막았지만 2차는 막기 쉽지 않을 것이다. 3~4일 만에 환자 수가 배로 늘어날 수 있다. 특히 변종이 생겨 바이러스가 더 강해질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신종 플루의 최악 시나리오는.

“전파력이 강한 H1N1이 사망률이 높은 H5N1(조류 인플루엔자)과 돼지 몸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 이런 변종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은 환자 수가 3000명까지 급증했고, 최근에는 사망자도 2명이 나왔다.

“한국은 현재로선 최악은 아니지만 공식 집계와 달리 실제 감염환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경우 5월 말 입원환자가 47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환자 수는 20배인 10만 명으로 추정됐다. 한국도 공식 집계된 환자의 20배 수준(6만 명)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어떤 대책을 추진해야 하나.

“4개월의 경험을 통해 신종 플루에 더 많이 걸릴 고위험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산부·청소년·심장병 환자·만성질환자, 당뇨와 고도비만 환자 등이다. 이들에게는 2차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료계뿐 아니라 가족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국제 공조 방안은.

“개별 국가가 노력해도 국제 공조가 없으면 소용없다. 전염병에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로 한 국제보건규약(IHR)이 2005년 생긴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6단계 경보가 발령됐었다. 환자 발생 정보를 각국이 정확히 공유해야 한다.”

-새로운 연구 성과가 있다면.

“일본에서 65세 이상 노인 4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대상자의 40%에서 항원·항체 교차반응이 보고됐다. 노인들이 이번 신종 플루에 상대적으로 적게 감염된 사실을 통해 H1N1과 유사한 바이러스가 60여 년 전에 출현했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의미 있는 메시지는.

“임상시험에서 예방 백신 1회 투여로는 부족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만약 2회 이상 써야 한다면 백신 공급 사태가 더 심화될 수 있다. 미국·멕시코·캐나다·유럽연합(EU) 대표들은 국민과의 의사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생명공학(BT)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숨지고 있다.

“통계적으로 사망 원인의 30%만 전염병이고, 70%는 암 등 퇴행성 질환이다. 약과 주사제 등 의학 기술이 생로병사 문제를 모두 좌우할 수 있다는 맹신은 금물이다. 개개인이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신영수=의료행정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지난해 9월 치러진 선거에서 임기 5년의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지역 사무처장에 선출돼 올해 2월 취임했다. 미국 예일대에서 보건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거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중국·일본·호주 등 30개 회원국 18억 명의 건강을 책임지는 파수꾼이다.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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