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남북관계]북 껴안을때 빗장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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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올해 남북관계는 그 어느 해보다 변수가 많은 만큼 희망과 불안이 엇갈리는 한 해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남북관계가 금강산관광 유람선과 북한 잠수정 침투로 극명하게 대비됐다면 올해는 유람선 (화해.협력) 이냐, 잠수정 (대립.갈등) 이냐의 큰 가닥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국과 주변 4강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에게 올해의 정세전망을 들어봤다.

1999년은 남북관계 개선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당국간 회담 재개와 정상회담 실현, 대북 경협사업 진전, 민간교류 활성화, 이산가족 재회 등 남북관계의 개선을 나타내는 징후들이 과연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지하듯이 남북관계는 정부 차원의 정책과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과 정치의 전개상황,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문제, 경수로 건설사업, 4자회담, 북한과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 남한의 대북정책과 국민여론 등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요인은 참으로 복잡다기하다.

북한 정권은 지난해 9월 헌법개정을 통해 경제정책 집행기관의 위상을 강화시킴으로써 일단 개방과 개혁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편된 정부구조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인가는 아직 불확실하다.

남한을 비롯한 자본주의 기업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의지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김정일 자신이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어 군부를 확고히 장악함으로써 경제정책에 대한 간섭 움직임을 차단할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중앙계획경제 체제의 개혁 및 경제관료들의 재량권 확대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또한 나진.선봉에 국한되어 있는 경제특구가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는 김정일의 의지에 의해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김정일의 개혁.개방에 대한 의지를 고무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의혹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다.

북한은 지난 수년간 핵무기나 '가난한 자의 핵무기' 로 불리는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의 개발.비축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북한은 이러한 무기개발 위협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대외적 생존의 틀을 확보했다.

또한 남한과 미.일로 하여금 평화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제했다.

당분간 북한은 계산된 도발 및 공멸위협을 대남.대미 협상의 유일한 카드로 여길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중.장기적으로 북.미 관계개선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북.미 제네바 합의로 경수로 건설사업과 중유공급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제2의 핵시설과 미사일 및 생화학 무기개발 의혹은 미국의 포용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지난 11월 한.미 양국 정상은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는 합의와 함께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할 경우 단호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 갔다.

북한은 핵을 비롯한 전략무기 개발 의혹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남한의 대북정책 및 국민여론이다.

남한의 대북정책은 정부의 확고한 대북 포용정책 의지 때문에 쉽사리 그 기조가 변화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여론은 북한의 태도와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북정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포용정책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가 포용정책을 지속해 나가자면 우선 국민통합적 사회구조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위에 선 (先) 신뢰구축.후 (後) 경제협력을 고집하지 말고 양자를 동시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이야말로 남한이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신뢰구축방안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방식도 반드시 남북 직거래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북한의 의구심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의 사례와 같은 한반도농업개발기구 (KADO) 나 한반도 산업개발기구 (KIDO) 와 같은 다자간 경제협력체제 구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의혹으로 인한 위기 재연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한.미 공조가 필요하다.

정부는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개발을 억제시키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한은 북한당국이 경제난 해결을 위해 경제개혁과 개방에 나서고 남한과의 관계개선만이 유일한 대안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대북경협 강화가 연계되면서 남한정부에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지만 대북포용정책 및 북한개혁.개방 유도정책의 기조는 결코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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