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3권분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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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미국 하원의 클린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은 정당대결의 양상이었다.

가결된 두 개 조항의 표결에서 '당론' 을 벗어난 투표는 양당을 합해 10여명에 불과했다.

25년전 닉슨 대통령이 탄핵안의 하원 표결 전에 자진해 사퇴한 데 반해 클린턴이 버티는 근거는 소속당인 민주당의 지원에 있다.

닉슨은 소속당인 공화당의 지지도 잃고 있었다.

민주당의원들이라고 클린턴이 좋아서 탄핵안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클린턴의 비행에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클린턴의 부담 때문에 민주당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탄핵안 반대의 핵심논리는 3권분립의 헌법정신을 지키자는 것이다.

클린턴의 엽색행각은 물론 나쁜 짓이고 그것을 감추려는 거짓말은 더욱 나쁜 짓이다.

그러나 의회의 대통령 탄핵은 직책 수행에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난 사람을 몰아냄으로써 적합한 사람으로 바꿔 대통령직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다.

개인을 정죄 (定罪) 하러 나서는 것은 의회의 본분을 넘어선다는 이 논리에 공화당 의원들도 상당수 공감했다.

그래서 탄핵안에 찬성하고도 상원에서 견책 정도로 마무리되기 바라는 뜻을 공표한 의원들이 많았다.

3권분립은 미국뿐 아니라 모든 민주국가의 기본원리다.

그러나 입법 - 행정 - 사법 3권 사이의 경계선은 복잡한 것이어서 실제 운용에서 모든 관계자들의 끊임없는 선의와 노력이 없으면 제대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 이 원리다.

미국이 민주국가로서 기본골격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의회가 행정부와 다투는 장면에서도 의원들 스스로가 헌법정신을 생각하며 의회의 월권을 삼갈 줄 알기 때문이다.

10년이 멀다고 정치적 격동을 겪어온 우리 백성은 변화의 고비에 이를 때마다 한편으론 걱정도 하면서 한편으론 희망도 품는다.

'국민의 정부' 를 맞아서도 이제 민주주의 하나는 제대로 펼쳐지는가 하는 기대를 품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부출범 1주년을 바라보는 새해 벽두부터 정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은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등지고 있다.

안기부가 국회를 일상적으로 사찰한다면 이는 민주질서의 근본에 관한 중대문제다.

야당의 문제제기가 타당한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개연성은 있는 일이다.

여당은 사소한 형사문제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 해서는 안되고, 과거 여당이었던 야당은 과거의 관행도 솔직히 털어놓고 문제의 검토를 도와야 한다.

정권보다 헌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이제는 우리 국민도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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