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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여성계 결산]가정폭력범죄 처벌등 굵직한 성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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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계는 98년의 문을 열면서 여성인력 30%할당제.여성부 신설 등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과 여성운동가 출신의 영부인이라는 든든한 '빽' 에 장미빛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면서 여성 우선 해고 등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거센 풍파에 시달리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며 대통령직속의 여성특별위원회가 발족했다. 이전의 정무제2장관실보다 권한이 축소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법무부.행정자치부.노동부.교육부 등에 새로 설치된 여성정책담당관실과 함께 국민연금법.민법 등의 여성관련정책을 조율하며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 특히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운영위를 통과해 연말 여성계를 흥분케 했다. 현재 여성특위에 준사법권을 부여하는 것 등이 논란돼 법안심사소위로 넘겨진 상태.

올해 여성들의 가장 큰 시련은 고용 불안. 대량 실직사태 속에 여성, 특히 기혼여성들이 해고 1순위에 올랐다. 또 '7.9급 공무원시험 때 군 복무자에게 3~5%의 가산점을 주되 2천년에 재검토한다' 는 제대군인지원법 시행령이 통과돼 여성들의 상대적 불이익이 크게 우려되기도 했다.

다행히 민간기업 등이 군복무 기간을 실제 근무기간으로 인정해 호봉 및 승진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한 병역법 개정안이 논란 끝에 유보돼 여성노동계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지난 7월부터 공무원의 여성채용목표제가 확대실시되고 있는 것이나 공공근로사업에 여성들을 위한 아동지도사업 등의 업종이 추가된 것, 또 5인 미만의 사업장에도 10월1일부터 고용보험이 확대적용된 것은 여성계로서는 고무적인 일.

9월말 확정된 국민회의 정치개혁안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시 여성 30%할당제를 정당법으로 법제화할 것을 명시한 것은 2천년 총선 때 여성의 정치적 진출이 확대될 수 있는 발판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경제난으로 가정불화도 심해지는 가운데 7월1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뚜껑을 열었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고소, 불구속 입건된 사건을 시작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아직은 시행 초기 단계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등이 설치한 불만신고센터에는 일선 경찰이나 일반인의 인식 부족으로 경찰에 신고하고도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보복성 폭행을 당했다는 상담전화도 잇달았다.

피해자를 위한 보호시설 확충 등은 숙제로 남았다. 5년을 끌어온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도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우조교측의 승리로 일단락지어졌다.

성희롱을 '업무능력을 저해했다는 것 등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한 행위' 로 확대정의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남녀차별금지법 등이 입법화될 때 성희롱 정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통해 힘없는 여성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국내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태영씨가 지난 17일 별세한 것은 올 여성계의 커다란 손실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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