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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삐삐’ … 이 소리만 울리면 수석들은 긴장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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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20면

청와대 인터폰은 소리가 세 가지다. 직원들끼리 하는 인터폰에서는 일반적인 키폰 소리가 나지만, ‘삐리∼ 삐리’하는 소리가 나면 수석비서관이 부하인 비서관이나 행정관을 부르는 소리다. 모든 사람을 긴장시키는 소리는 셋째 유형이다. ‘삐삐삐삐…’하는 식으로 긴박감 있게 울리는 소리인데 바로 VIP(대통령을 지칭하는 말)가 수석비서관에게 인터폰을 할 때다.

당신이 모르는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이 소통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청와대 인터폰이다. 이 대통령은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궁금한 사항이 있거나 지시할 일이 있으면 인터폰을 건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 후 처음 열린 확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가지 선언을 했다. “앞으로 필요할 때에는 수석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비서관에게도 전화해 일을 할 것이다”는 것이었다. 의전과 보고 체계를 중시하는 청와대 내부 관행에 비춰볼 때 파격이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현재 이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그런 격식 파괴가 흔치는 않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통령-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의 보고 계통이 무너질 경우 생길 조직의 부작용을 감안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짐작이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얼마 전 휴대전화에 찍힌 부재중 전화 번호가 VIP 번호여서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 대통령이 각종 회의 등을 통해 내린 구두 지시나 관심 사항은 자체 내부 전산망인 위민(爲民)시스템을 통해 담당자들에게 전달된다.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대통령 지시사항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주관’ ‘공유’ 등으로 담당 부서를 지정해 통보한다. 이런 내용은 인트라넷을 통해 전달함과 동시에 자동으로 해당 비서관들에게 문자메시지(SMS)가 간다. 저녁 회식을 하다가도 이 SMS를 받아 사무실로 부지런히 들어가는 것은 청와대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휴대전화는 이 대통령이 애용하는 ‘소통’ 방법이다. 장관뿐 아니라 외부 인사들을 찾을 때는 휴대전화를 자주 건다.지난해 초 정권 출범 직후 꽉 막힌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대치 국면에서 이 대통령은 직접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12분간 전화 설득전을 벌였다. ‘담판 회동’이나 ‘깜짝 방문’ 같은 직접 면담 관행에 익숙한 여의도 정치권에서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전화 정치’는 찬반 논란을 낳았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민간 경제연구소 소장이나 현역 기업인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과거 대통령들은 하지 않았던 MB식 민심 청취법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외부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전화하시라”란 말을 자주 한다. “전화하는 것 주저하지 말라. 새벽 1시에서 4시까지만 안 하면 된다”(2007년 10월 시·도 선대위원장들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나에게 직접 전화하라”(2007년 12월 당선 직후 대기업 총수들에게) 는 등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를 향한 비판 중 가장 강한 것은 “청와대가 민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전화를 통한 소통을 강조하지만 시중의 다수 여론은 “청와대의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정치력이 없다”는 지적도 민심을 국정 운영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청와대와 바깥 세상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건 대통령·청와대 비서진의 소통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건물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 비서실 건물인 위민관에서 본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로 가려면 경비 초소 2개를 거쳐 약 500m를 걸어가야 한다. 따라서 본관에 가는 수석들은 대개 차량을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청와대 본관은 웅장한 궁궐을 연상시키는 건물로 위압감마저 느끼게 한다는 전언이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가 참모들의 방과 바로 붙어 있고, 백악관 뜰인 로즈 가든으로 곧바로 나갈 수 있는 개방형 구조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관 가까이 건물 하나를 신축했다. 현재 위민1관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비서동 3개 중 유일하게 청와대 안뜰인 녹지원 쪽에 대통령 전용 출입구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도 하나 만들었다. 참모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청와대에서 혼자 지내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처음엔 이곳을 자주 이용했던 노 전 대통령도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을 느꼈고, 결국엔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일주일에 서너 차례 청와대 본관 집무실을 떠나 위민1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을 본다고 한다. 하지만 비서동의 집무실을 이용한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는 건 아니다. 비서관이나 바깥 인사들의 의견을 듣는 노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립된 공간인 청와대 본관은 밤이 되면 적막에 휩싸인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했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는 대통령 부부가 지내기는 적막하고 외로운 공간이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바깥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참모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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