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탈북할 수 밖에 없는지 굶주림과 절망 시에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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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북한의 실상을 설명하다가 굶어죽은 아이들 얘기를 해줬어요. 그랬더니 한 학생이'라면이라도 끓여먹지 왜 바보같이 굶어 죽느냐'고 반문하더군요."

탈북 여성만을 수용해 교육하는 경기도 분당의 하나원 분원에서 생활교육을 맡고 있는 김옥애(52) 통일부 상임연구위원. 2001년 1월 서울에 온 탈북자 출신인 김씨는 "김정일과 북한 고위층도 주민의 굶주림을 외면하지만 남한 사람들도 먼나라 이야기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시집 '죽사발 소동'(삼우사 발간)을 펴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북한에서의 배고팠던 생활과 98년 1월부터 3년간 중국에서 숨어살던 이야기를 담은 42편의 시를 엮은 것이다.

'핏물 들여 흘러가는 아들 시체를 보고도/잡을 염도 못하는 창백한 엄마의 얼굴/굶주린 창자를 채워보려고/두만강의 거센 물결을 헤쳐오다/피눈물로 헤어진 혈육의 슬픔을/두만강아 말하여다오/온 세상이 다 알도록 소리쳐다오'(두만강아 말하여다오 중에서)

그의 시 곳곳에는 배고픔으로 가족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탈북해야 했던 북녘 여성의 고단한 삶과 절규가 녹아있다.

김씨는 "남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족을 버려두고 오는 걸 보면 탈북자들은 인정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라고 하곤 한다"며 "그런 분들께 탈북자들이 왜 사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시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원래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났지만 대학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64년 북한으로 갔다. 처녀 시절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다 탈북 직전에는 황북 사리원시와 인접한 봉산군의 급양관리소에 근무했지만 쪼들리는 살림을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막내 아들(25)만 데리고 북.중 국경을 넘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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