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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상형문자의 최고문자설 취급소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인간의 역사는 문자와 함께 한다고 일컬어진다.

문자가 있기 이전의 역사를 유사 (有史) 이전이라고 하는 까닭도 그런 맥락의 것임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문자라는 게 정설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고대문명을 창시한 수메르인이 사용했다는 쐐기형 문자는 일부 학자에 의해 우리 고대문명과의 관련 가능성이 제기된 바도 있다.

한데 그런 정설화된 문자의 역사가 뒤바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인류 최고 (最古) 문자는 이집트 상형 (象形) 문자" 라는 기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 기사는 비단 문자의 가장 오래됨의 여부를 떠나서라도 인류의 문명사를 다시 써야 할 당위성마저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기사를 다룬 신문들의 자세는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지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특히 두가지 점에서 연유한다.

첫째는 뉴스가치의 판단에서 혼란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문자의 기원을 다시 써야 할 정도의 기사라면 당연히 비중있게 다뤘어야 할 일인데, 이 기사를 주요 뉴스로 1면에 취급한 신문은 극히 소수였다.

대부분의 신문은 단순히 화젯거리로 다룬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요 뉴스로 다룬 곳조차 구체적인 분석이나 해설엔 소홀하기 짝이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외신에선 고고학 (考古學) 과 문자학 측면에서 심층보도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이집트 상형문자의 최고문자설을 발표한 독일 고고학연구소 군터 드라이어 소장의 회견내용은 여러가지로 주목되는 것이었다.

카이로에서 발표된 이 내용은 ①지난 85년이래 발굴한 결과 약 3백점의 점토판 (粘土板) 과 도기에서 동식물과 산을 선으로 그린 문자를 찾아냈고 약 3분의 2를 해독했다.

②발굴장소는 대부분이 카이로 남쪽 약 4백㎞ 지점의 아비도스에 있는 이집트 선왕조 시대의 '전갈왕 1세' 무덤이었다.

③발견된 유물을 방사성탄소에 의해 연대측정해 본 결과 BC3300~BC3200년의 것이었고, 일부는 BC3400년의 것으로 판명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결국 여태까지 가장 오래된 문자로 일컬어져 왔던 수메르 문자가 BC3100년이었다는 점에 비춰 그보다 2백~3백년 앞섰다는 이야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발견된 문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온 이집트 고대문자인 히에로글리프, 즉 성각 (聖刻) 문자와도 판이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신문들이 이 기사를 다룸에 있어 나타낸 석연치 않음의 두번째 포인트는 특히 유수한 신문에서 두드러졌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외신의 소스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제뉴스의 경우 특파원이 보낸 것이 아닌 기사는 외신을 전재하는 것인 만큼 당연히 외신의 출처를 명기하는 것이 정도일 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 신문에선 일반적인 외신기사조차 그러한 소스를 밝히지 않은 채 마치 자사 (自社) 기자의 기사인 것처럼 기자 이름까지 밝히면서 기사화하는 버릇이 들고말았다.

이번의 이집트 상형문자 기사만 하더라도 카이로에 기자를 특파하지 않았는 데도 그것을 취재한 것인 양 독자를 착각하게 한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일부 신문에선 외신의 이름을 밝힌 곳도 있지만 심한 경우는 그런 외신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기자가 위성방송을 통해 취재한 것처럼 쓴 신문조차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기사들이 한결같이 외신을 고스란히 전재한 것보다 조금도 우위 (優位)에 있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신문 처지에서 볼 때 도덕성의 문제와 함께 스스로 신문의 질을 떨어뜨리게 한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며, 독자 처지에서 볼 때는 뉴스 서비스의 부실 (不實) 뿐만 아니라 독자를 농락했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규행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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