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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심의 과정]준사법권 수위놓고 막판진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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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4일 오후 국회 운영위 앞.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이 운영위를 통과한 것이 확인되는 순간 30여명의 여성계 인사들은 환호와 눈물을 동시에 쏟아냈다.

한 여성인사는 "이렇게 감격적인 순간이 올 줄 몰랐다" 고 말했다.

여성계로선 숙원사업 중 하나를 푼 셈이다.

남녀차별금지법은 사실 소리없는 산고 (産苦) 를 겪긴 했지만 법안처리는 비교적 매끄러웠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남녀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필요성엔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법안의 태동 움직임은 지난 9월께부터 구체화됐다.

물론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지난 3일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돼 두차례 법안심사 소위를 거치는 동안 국회 운영위도 이 법 제정에 이렇다 할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윤후정 (尹厚淨) 여성특위위원장 등 여성계 인사들이 의원회관을 누비며 입법의 필요성을 호소한 것도 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이 법의 위력을 결정짓게 될 남녀차별행위 처벌조항은 상당히 약화됐다.

당초 원안의 벌칙조항은 '남녀차별 개선위원회의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에 대해 징역 2년.벌금 2천만원을 부과한다' 는 것이었으나 운영위 심의과정에서 '과태료 1천만원 이하' 로 하향조정됐다.

하지만 정작 변수는 막판에 떠올랐다.

한나라당이 여성특위 산하의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준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의 타당성을 문제삼고 나선 것. 한나라당 권기술 (權琪述) 의원은 "여성특위는 순수한 대통령 자문기구에 불과한데 집행력을 가진 남녀차별개선위를 둔다는 것이 정부조직 원리상 맞지 않는다" 고 따졌다.

같은 당 이규택 (李揆澤) 의원은 "여성특위에 준사법권을 주면 중소기업특위 등 다른 자문기구도 준사법권 등을 달라고 요구할 것 아니냐" 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이같은 문제들을 한꺼번에 늘어놓으며 한 때 "아예 소위에서 보다 심도있게 논의하자" 며 강공을 펼쳤다.

이규택.오양순 (吳陽順) 의원 등은 "대통령 자문기구인 여성특위에 이런 권한을 줄 게 아니라 여성부를 신설하는 게 낫다.

법안에 여성부 신설 시한을 명시하자" 는 긴급제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법안처리를 무산시키겠다는 의도보다 "짚을 것은 짚겠다" 는 야당식 제스처임이 역력했다.

이미 전날 밤부터 국민회의 장영달 (張永達).유선호 (柳宣浩) 의원 등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가 법안 수정안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편 법사위에서도 이런 논란은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나라당 율사들이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평등이란 대의명분 앞에 법사위와 본회의 처리과정에서 입법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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