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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차별금지법 제정]성희롱에서 채용차별도 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4월 미 연방기구인 고용평등위원회 (EEOC) 는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미국 현지법인에 총 1억5천만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공장 내 5백명의 생산직 여직원들이 '성적인 은밀한 농담' '더듬기' 등의 성희롱을 당했다는 것. 이후 대부분 미국 기업들은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매년 남성 사원들을 대상으로 '성차별 방지교육' 을 실시하는데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당시 이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유난스러운 미국 사회의 얘기로 치부했다.

적잖은 한국 남성들은 상상력을 동원하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젠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됐다.

자칫하면 본인이 엄청난 망신을 당함은 물론 그런 '잘못' 을 있게 한 고용주는 3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등 혼쭐나게 된다.

23일 국회 환경노동위를 통과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비단 이뿐이 아니다.

24일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남녀차별금지법' 은 정부.공공기관.기업 등이 고용.보직.승진 등에서 여성을 차별할 경우 피해자인 여성이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이를 호소하고 사실로 확인된 이후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를 근거로 피해 여성은 손해배상소송도 제기,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도 있으며 여성발전기금에서 소송비용 등도 지원한다.

미국에선 고용.승진 등에서의 차별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됐고 이젠 성희롱이 주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성희롱 문제까지 포함, 아직 남성 중심의 의식과 행태가 보편화된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파문과 물의를 빚게 할 법이 도입되는 것이다.

두 법안 모두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 법사위.본회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법규정이 다소 달라질지는 몰라도 이런 법정신만은 틀림없이 반영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사회 전반에 걸친 혁명적 변화도 예상할 수 있다.

또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성희롱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남녀차별금지법은 성희롱 문제 외에 고용.승진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어 법사위 심의과정에서 일부 조정될 가능성도 있으나 성희롱 금지를 포함한 남녀평등의 정신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남성들로서는 '혹시' 하는 기대도 가질 필요가 없게 돼있다.

이와 함께 남녀고용평등법이 성희롱을 '사업장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인 언어나 행동으로 성적 굴욕감을 유발케 해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로 규정한 데 반해 남녀차별금지법은 보다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

즉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 및 접근, 성적 성질을 가지는 언급, 외설적 출판물을 보여주는 행위, 언어나 행동에 의한 성적 요구를 포함하는 행위' 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느 법의 규정이 우선되더라도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멋대로' 행동했던 남자들은 지금까지의 행태를 고쳐야 하게 됐다.

특히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전적으로 여성의 주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남성 및 조직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외설적 그림 한장을 벽에 붙이거나 책상 앞에 놔두는 행위 등도 얼마든지 법적 제재를 당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남녀차별금지법이 본격 시행되면 '남성 동료가 싫어하는 성적 농담을 계속한다' '남자 신입사원은 1백명을 뽑았는데 여자는 1명만 채용했다' '남자 직원에 비해 급여가 60%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부서에 할당된 D인사고과가 여직원인 나에게로만 떨어지고 있다' 는 등 각종 남녀차별에 대한 고발이 빗발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여성특위 내 남녀차별개선위원회가 즉각 직권조사에 나서고,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 정부기관.사업장은 꼼짝없이 시정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내년에 한국 사회는 또다른 변혁을 맞게될 게 확실하며 민법 등 다른 법 개정.적용에도 영향을 미칠 게 예상된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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