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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문화계 송년브리핑]미술계/기획전 실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98년은 문화계 전반이 그랬지만 특히 화랑들에게 혹독한 한해였다.

'소비 자제' 를 외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술품 거래의 큰 고객이었던 대기업은 구매를 뚝 끊어버렸고, 대여해간 미술품도 반납을 해왔다.

화랑마다 차이는 있지만 거래량이 30%에서 심하게는 50%까지 줄었다.

국제화랑의 안젤름 키퍼전 등 올해 잡혀있던 외국작가 초대전도 많이 백지화됐다.

◇ 갤러리 폐관.축소 몸살 = '허리띠 졸라매기' 가 가장 만만한 문화부문의 목을 조르면서 대기업이 운영하던 갤러리들의 폐관이 이어졌다.

갤러리 아트빔 (벽산) , 포토 스페이스 (삼성) , 마포 서남미술전시관 (동양) 등이 문을 닫았다.

지난 7월 폐관이 결정된 동아갤러리는 현재 대관전 하나만 남겨놓았다.

'포럼A' 의 서명운동으로 폐관확정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 문닫은 군소화랑, 카페로 업종전환한 화랑도 있고, 올해 겨우 1회 기획전을 열었거나 '개점휴업' 중인 곳도 많다.

◇ 기획전 부재 = 이러한 불황 속에서 볼만한 기획전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판매가 안되는데 전시회를 열어봤자 뭐하겠느냐" 는 한 화랑주인의 푸념에서 알 수 있듯 소비의 위축이 가장 큰 이유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좀 나은 큰 미술관에선 외국작가전을 마련해 그나마 '빈곤 속의 풍요' 를 유지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영국현대작가전' , 성곡미술관의 '스위스현대미술전' , 아트선재센터의 '언홈리 - 호주현대작가전' 등이 그것. 주한 영국문화원에서 예산의 반 이상을 부담한 '영국현대작가전' 처럼 이러한 해외작가전은 대개 상대국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전시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내년도 주요 미술관.화랑의 전시일정을 보면 호암갤러리.선재미술관 등을 제외하고는 해외작가전이나 대형 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작고화가 위주로 '안전하게' 가는 경향이다.

호암갤러리가 '소정 변관식전' 을 2월에 계획하고 있고, 갤러리 현대는 1월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이중섭전' 을, 5월에는 환기미술관과 공동으로 '김환기전' 을 마련한다.

가나아트센터도 2월에 '고암 이응노 10주기 기념전' 을 준비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동안 정리하던 근대미술사 부분 중 나머지인 근대 공예.조각과 건축전 정도만을 계획하고 있다.

◇ 경매문제 논란 = 경매문제는 이러한 경제위기와 함께 불거져나와 화랑가를 1년 내내 달군 논란거리였다.

지난 2월 동숭갤러리가 경제난에 시달리다 못해 '땡 처리' 식으로 1백50여 점의 미술품을 경매에 붙이면서부터 촉발이 됐다.

호당가격제가 붕괴하면서 가격의 거품이 빠졌다는 긍정론과, 미술품 거래라는 화랑의 가장 원초적 기능마저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론이 대립했다.

화랑 판매와 경매의 주체가 동일할 수 있느냐는 일부 화랑들의 반발은 내년 한국화랑협회를 주축으로 경매회사를 만들겠다는 문화관광부의 발표와 얽혀 한동안 미제 (未題) 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 '사진영상의 해 = 한편 관련기획전만 10여 개에 달했던 '사진영상의 해' 는 대체로 외화내빈이었다는 평. 사료의 충실성이라는 점에서 '한국사진역사전' 이 호평을 받았지만 교과서같이 지루한 전시형태 때문에 관람객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조직위원회 중심의 짜임새없는 '반짝 이벤트' 는 내년 '건축문화의 해' 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돼 문화관광부의 '…의 해' 운영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형편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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