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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 억울한데 규제로 겹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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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충남 천안의 말기 환자 보호단체인 '사랑의 호스피스'는 지난 6월 15일 새 수도 후보지 발표 당일 시설규모를 늘리기 위해 건축허가 신청을 냈으나 시로부터 허가가 보류됐다. 병원 일대가 건축제한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말기 암환자들은 좁은 공간에서 마지막 남은 짧은 삶을 불편 속에 보내고 있고 환자들의 입원시기도 늦춰지게 됐다. 이 병원은 올해 충남도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3층 건물을 지어 환자 수용규모를 늘리고 목욕실 등 편의시설도 대폭 개선할 계획이었다.

정부가 지난 6월 15일 새 수도 예정지 평가발표에서 탈락한 이른바 '들러리 후보지'에 대해서도 건축허가 제한조치를 내리면서 현지 주민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 사례=충북 진천의 한 중소기업은 화재로 공장 일부가 타 생산라인을 증설하려 해도 '느닷없는' 건축규제 때문에 두달 넘도록 발목이 묶여 있다. 이 회사는 "주문이 밀려들지만 일부 라인을 가동못해 생산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영업손실만 수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봄부터 준비해온 올가을 신제품 출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답답하다"고 걱정했다.

본지 취재진이 피해사례를 취재하자 회사 관계자는 소방.위생 검사 등 공무원들의 규제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천안시 성거읍에서 과즙 음료를 생산하는 ㈜참다운은 새 수도 관련 건축허가 제한으로 수년 간 준비해온 '회사 중흥계획'이 삐걱거리고 있다. 회사 측은 인근 성남면 신사리 3000여평에 730평 규모의 새 공장을 짓고 직원을 두배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 지난 4월 공장설립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새 공장 앞을 지나는 가스관을 다치지 않도록 하느라 설계가 늦어진 탓에 지난달 9일에야 건축허가 신청을 냈다.

이 회사 곽재성 관리과장은 "올 11월 완공목표로 인력충원 계획도 세우고 설비자금 계획까지 세웠는데 모든 것이 올스톱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천안에서 보류된 건축허가 신청은 21건이다.

음성군 삼성면의 유원컴텍은 최근 회사 기숙사를 지으려고 군청에 건축허가 변경을 신청했으나 역시 제동이 걸렸다. 이 때문에 공사 중이던 건물 1층 바닥 철근이 모두 녹슬어 공사 재개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건축제한으로 묶인 지역의 일용직 근로자들도 일감이 없어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모(37.연기군 조치원읍)씨는 "요즘 집사람이 식당일을 나가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치원 읍사무소 앞에는 요즈음 공사장 일감을 못찾은 인부들이 매일 수십명씩 서성대고 있다.

◇건축규제 언제 풀리나=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11일 새 수도 최종 입지를 결정하는 대로 탈락한 후보지 세 곳의 부동산 규제를 풀기로 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지난달 5일 후보지 네 곳에 대한 평가 결과대로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장기면 일대가 최종 입지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종 입지에서 탈락한 충북 음성.진천군, 충남 천안시, 충남 논산시 등 세 곳의 부동산 규제는 주민불편을 감안해 해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충북 음성.진천 등은 이르면 이달 중 토지거래허가와 건축행위 제한 등의 규제가 풀릴 전망이다.

천안.진천=조한필.안남영 기자.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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