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경영학]6.신뢰보다 더큰 성공 밑천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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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된 후 다시 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빈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피난민이나 패잔병까지도 그와 함께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또 일치단결해 용감하게 싸웠다.

그뿐 아니다.

피난을 가는 노인들까지도 그를 도우려고 애썼다.

이순신은 "노인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 주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강제로 권했다" 고 '난중일기' 에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은 가난했지만 '신뢰' 라는 재산을 크게 쌓았다는 점에서는 정말 부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그를 믿고 존경했기 때문에 기꺼이 따르고 도왔다.

그가 주위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깨끗한 몸가짐이었다.

그는 출장갈 때 지급받는 쌀에서 남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도로 가져와 반납했다.

또 상관이 자기와 친한 사람을 무리하게 승진시키려 하자 이를 강력히 반대해 저지시킨 적도 있다.

이런 성품 탓에 이순신은 윗사람에게는 미움을 사기도 했으나 부하들은 그를 진심으로 신뢰했다.

우리는 예부터 진퇴가 분명해야 훌륭하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여겼다.

이순신은 강직한 성품으로 세번 파직당하고 두번 백의종군했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그의 인생관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항복에 따르면 이순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장부로서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 쓰이면 죽기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쓰이지 않으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충분하다. 권세에 아부해 한때의 영화를 누리는 것은 내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바다. "

이순신의 부하사랑은 남달랐다.

장수로서 품위가 없다고 모함을 받을 정도로 부하들과 마음을 트며 같이 일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다.

궁색한 사람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준 적도 있다.

이순신의 이같은 따뜻한 보살핌과 인간애로 인해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순신은 오랫동안 쌓은 신뢰라는 재화 (財貨) 를 바탕으로 위급한 상황에서도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신뢰를 잃으면 한 국가나 기업도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우리가 IMF 구제금융을 서둘러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도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우리를 불신해 융자해준 자금을 긴급히 회수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5백억달러를 넘었지만 제2의 외환위기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어떤 계기로 외국인들이 우리를 또 불신하게 되면 냉혹하게 다시 자금을 회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신이 팽배한 국가는 지하자원같은 물질적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없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선 개인 또는 기업간 거래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신뢰성이 낮다.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 만든 계약서라도 상대방의 기회주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의 거래비용이론에서는 신뢰를 중요한 재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뇌물을 없애고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며 정보 공개로 투명성을 높이면서 끊임없이 나눔의 삶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신뢰라는 재산을 쌓아나가야겠다.

지용희(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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