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중위 사망관련 5대 의문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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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훈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고 있는 합동조사단은 10일 몇 가지 의혹을 새로 포착, 추적하고 있다.

참고인과 전역장병들의 진술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다섯 가지 의문점을 짚어본다.

◇ 사라진 수첩 = 金중위 사망의혹 해결에 단서가 될 수 있는 수첩이 사라졌다.

이 수첩은 그동안 유족들에 의해 '고의적인 폐기' 가능성까지 제기됐으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왔다.

그러나 합동조사단은 소대원들로부터 지난 2월 24일 사고현장에서 당시 부대 지휘관들이 金중위의 시신 (屍身)에서 수첩을 꺼내간 뒤 이를 폐기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金중위가 매일 부대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수첩에 꼼꼼히 적어놓을 정도로 치밀한 성격을 갖고있었다고 말한다.

金중위 부모는 "사건 직후 부대측에서 보내온 아들의 유품 (遺品)에 수첩이 빠져있어 수차례 돌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무시당했다" 고 주장했다.

수사당국은 수첩폐기와 '타살의혹' 의 은폐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또 金중위의 노트북컴퓨터와 일기장도 사라졌다.

이와 함께 金중위가 남긴 또다른 노트에서 다른 사람의 필체로 '비리를 덮어둘 수 없다는 거지' 라는 글자가 쓰여있는 것이 발견돼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 특혜인사 시비 = 金중위 죽음에 개입한 의심을 받고 있는 김영훈중사는 소대장 사망 사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19일자로 미8군 산하 용산18의무사령부 행정관으로 전격 보직됐다.

이 부대는 121병원 등 용산기지내 카투사의무병을 관리하는 부대로 인기가 있다.

소위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곳에 그가 부임하자 부대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金중사는 金중위 사망과 관련, 군수사대의 조사를 받았고 개인적으로 어학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특히 金중사는 의무사령부 창립이래 가장 어린 나이에 행정관에 임명됐다.

그동안의 행정관보다 15살 정도가 젊은데다 주로 상사들이 오는 자리에 중사가 임명됐다.

때문에 金중사의 인사에 특혜의혹이 일고 있다.

◇ 법의학자들의 타살 가능성 소견 무시 = 육군 검찰부가 타살 가능성을 시사하는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金중위 사건을 자살로 몰아가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육군 검찰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김훈 중위 사망사건 수사결과 보도자료' 에 따르면 군 검찰은 金중위 머리에 생긴 혈종 (피멍) 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서울대. 고려대 법의학교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黃적준 교수는 "혈종은 총상과 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는 소견을 밝혔다.

서울대 李윤성 교수도 "외부 충격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이 크나 총상에 의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며 외부 충격에 의한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특히 재미 교포 법의학자 노여수 (盧麗洙) 박사는 "혈종은 金중위가 외부 충격을 받아 실신하면서 생긴 것" 이라는 소견을 밝히면서 金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러나 군 검찰은 이같은 견해를 종합한 판단을 내리면서 "혈종이 외부충격에 의한 것인지, 총상에 의한 것인지 한쪽으로 단정하기 곤란하다" 고 결론지었다.

법의학자들의 타살 가능성 소견을 외면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 '내통메모' 사실인가 = 합동조사단은 金중사가 북한군 적공조 (敵攻組) 조장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과 함께 이름과 주소를 교환한 메모를 확보했다.

메모에는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자' 는 내용까지 담겨있다는 것이 군당국의 설명이며, 메모작성 이유와 金중위 죽음의 연관성 여부를 추적하고 있다.

◇ 소대원 진술서 조작의혹 = 金중위 사망 직후 군수사기관에서 전 부대원을 상대로 받은 진술서에 시간대별 움직임이 틀리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金중위를 처음 발견한 朴모 일병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TV를 본 후 소대장께 식사인사를 위해 찾아다니던 중 벙커3에서 숨진 金중위를 12시20분쯤 발견했다" 고 진술했다.

다른 병사들도 한결같이 12시20분에 입을 맞추고 있다.

심지어 1차진술에는 시간을 기록하지 않았던 朴모상병은 한달 뒤 참고인 진술에서 당시 상황을 1분단위로 진술, 오히려 의혹을 샀다.

유족들은 金중사가 사고 직후 소대원들에게 입을 맞추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金중위 사건 변호인인 김형운 (金亨運) 변호사는 "사건발생 후 연합사의 고위 간부가 '밥 먹으러 나가다 총성이 울렸다는 신고를 받았다' 고 말한 것을 들었다" 며 "군대의 식사시간이 11시30분이기 때문에 金중위는 11시쯤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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