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부족 기현상…유통업계 물량확보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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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부 李모(35.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지난주 백화점 바겐세일행사에서 겨울코트와 구두를 사려고 백화점 몇군데를 다녔으나 결국 사지 못했다.

행사에 나온 의류 사이즈가 한정돼 몸에 맞는 옷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구두를 사려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발치수에 맞는 구두를 주문했더니 판매원은 "이 구두는 아예 그 사이즈를 만들지 않았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올해 내내 잦은 세일.재고행사 등으로 재고 물량이 바닥나면서 李씨처럼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어서 못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의류는 지난 겨울 세일기간중 사은행사 등과 겹쳐 매출이 급상승하면서 쓸만한 재고는 바닥이 난 상태라고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도 행사에 쓸 물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겨울바겐세일이 끝나면 연례적으로 벌이는 '불우이웃돕기' 바자행사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대부분 백화점들이 바자회를 축소하거나 이벤트행사로 대체하는가 하면 아예 취소한 백화점도 있다.

◇ 물량이 달린다 = 삼성플라자 태평로점이 겨울바겐세일 당시부터 벌여온 '겨울코트 기획전'에서는 옷크기가 여성용 중간인 55, 66 밖에 없어 광고 등을 보고 코트를 장만하러 왔던 소비자들이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다.

이런 광경은 지난 바겐세일기간동안 롯데.신세계 등 대형백화점에서도 흔히 연출된 장면이다. 이에 대해 롯데 여성의류바이어 이효욱 과장은 "재고가 바닥난데다 업체들이 30~50% 감산하면서 작고 큰 사이즈는 재고로 남을 부담 때문에 아예 만들지 않아 선택폭이 적어졌다" 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업체들도 아예 재고물량을 대형백화점 한곳에 넘겨주는 '몰아주기'에 나서면서 중소백화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 중소백화점 관계자는 "대형백화점들이 종전에는 취급하지도 않던 B급품까지 싹쓸이 해가는 바람에 이제는 팔 물건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태" 라고 말했다.

신세계.롯데 등 대형백화점 관계자들조차 "업자들이 물량을 몰아주기는 하지만 이제는 쓸만한 재고는 우리도 구경하기 힘들다" 고 말했다.

LG패션 관계자는 "올해는 생산 자체가 줄어 재고도 20~30%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는 내년 행사를 위해 남겨둬야 하는데다 지난해 재고도 거의 없어 백화점에 대줄 상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 말했다.

또 한 의류업체 관계자도 "수입원단 등 발주가 안되고 옷감업체들이 현금을 주지 않으면 물건을 주지 않아 원단수급이 어려워 내년에는 물건만들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며 "의류의 경우 물량 부족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백화점 행사가 달라진다 = 올 재고의류 부족으로 가장 타격을 본 것은 '불우이웃에게 수익금이 돌아가는' 바자행사. 그동안 주로 재고의류 등을 판 수익금으로 이웃돕기 기금을 만들던 백화점들이 올해는 아예 행사방향을 바꾸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물량부족으로 알맹이 없는 행사가 될 것이 뻔한 만큼 의례적인 행사는 하지 않겠다" 며 아예 바자회를 취소했다.

신세계도 세일직후 바자회 취소 결정을 했다가 다시 번복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재고전 등 기존의 판매행사방식이 아니라 11~20일 전점에서 발행한 영수증 한장당 1백원씩 기금을 모아 불우이웃에 전달하는 이벤트로 방향을 바꿨다.

LG백화점도 지난해까지 전점에서 벌이던 바자회 대신 11~17일 각 점별로 유명인 사인대회와 쌀모으기.옷모으기 행사로 축소했다.

그랜드는 각 협력업체로부터 기증받은 물품을 5천원, 1만원 등 균일가에 20~50개씩 한정판매하는 행사로 자선바자회를 벌일 계획이다.

뉴코아는 12~25일 크리스마스 선물행사와 연계해 선물용품 판매액의 2%를 불우이웃돕기 기금으로 내는 행사를 마련했다. 롯데는 11~20일 연예인 애장품과 협력업체 기증품을 판매하는 이벤트 바자회를 갖기로 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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