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군 기강확립 군대논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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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잇따라 발생한 각종 군 사고는 사상 유례없는 경제난으로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10 가구당 1명꼴로 귀한 자제들을 군에 맡겨 놓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이같은 불안감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와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과거에는 훨씬 더 많이 있었고 발생빈도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된 인구 70만명의 도시에서도 어느 하루 사건.사고 없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될까. 하물며 개인화기에서부터 중화기.폭발물 등에 이르기까지 온통 위험장비로 무장한 70만 군대에서 사고는 있게 마련이다.

군 사고가 마치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더욱이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정부의 햇볕정책 때문에 군의 기강이 해이해져 이런저런 사고가 발생한다고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과거 강풍정책을 쓰던 시절에는 아무런 사고가 없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이처럼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현실이야말로 국가안보를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할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존재해야 하고 훈련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군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를 눈감아 주거나 군에 면죄부를 주자는 건 결코 아니다.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는 분명히 가려져야 하고 경중에 따른 신상필벌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30년간의 군 경험으로 볼 때 이같은 처벌이 과연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당 지휘관을 중징계로 다스리는 것은 가장 손쉬

운 하지하책 (下之下策) 일 뿐이다.

알고 보면 이번 일련의 사고들도 군에서는 발생가능한 것들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생소하고 언론에 크게 부각되면서 실제 이상으로 과대포장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징계권자도 국민여론을 의식, 이같은 조치를 내렸을 법 하다.

지난 문민정부 시절 군 수뇌부는 군에서 사소한 사고만 생겨도 야전 지휘관들을 가차없이 날리곤 했다.

당시 군에서는 '삼생오사 (三生五死)' , 즉 신문에 자기 이름이 세번 나면 살고 다섯번 나오면 죽는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 결과 새로 부임한 야전 지휘관들은 '무사고' 를 지휘방침으로 내걸고 예정된 훈련을 아예 생략해 버리기 일쑤였다.

전임자가 사고 때문에 물러났으니 후임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소 우수한 장교가 어쩌다 발생한 사고 때문에 물러나야 하고 자질도 없는 장교가 운 좋게 그 뒤를 잇는다면 결국 국가안보를 '운 좋은 사람' 만이 도맡게 될텐데 과연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군대의 문제는 군의 논리로 풀어야지 정치적인 논리로 풀어서는 안된다.

군 지휘관에 대한 징계문제를 여론이라는 바람몰이 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국민이 군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미사일 오발 사고나 조명탄 사고, 수류탄 폭발사고 등은 안전교육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강화도 인근에서 간첩선을 놓친 것은 중대한 작전실패로 그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는 적절한 책임규명 못지 않게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북한측 병사들과의 비밀접촉은 군대내 기강확립 차원에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평소 부대내 보고체계.확인절차.후속대응 등 부대관리 및 근무기강면에서 상상할 수 없는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군 수뇌부는 그 전말을 낱낱이 밝혀 국민들에게 소상히 보고하고 차제에 김훈 중위 사망사건도 한점 의혹 없이 수사해 타살 여부를 밝혀내야 한다.

군의 사고는 자칫 인명피해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일반 사고와는 다르다.

비전투 인명손실은 곧 국가자원의 손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 70만 대군을 가진 국민답게 사소한 군 사고들에 대해 좀 더 의연하고 대범한 자세를 가질 때가 됐다고 본다.

특히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바로 그런 점에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바꿔주는데 앞장서야 한다.

군대 안에서 발생한 사고들에 대해 중심을 잡고 '군대문제는 군에 맡깁시다' 하며 군 당국자들을 엄호해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을 안심시켜 나가야 한다.

대통령이 너무 여론에만 집착할 경우 일반 국민들의 정서를 달래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군의 기강은 오히려 흐트러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승우(현대사회연 소장.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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