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구조조정]남은 쟁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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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5대그룹이 구조조정 '원칙' 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쟁점은 남아 있다.

일부 쟁점은 앞으로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시간을 축낼 가능성도 있다.

경영권이나 오너 사재 (私財) 출연 문제도 분명하지 않으며, 반도체의 경우 책임경영 주체를 선정하는 문제도 수월치 않을 전망이다.

또 주력기업을 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에 넣으라는 정부와 왠지 꺼림칙해하는 5대그룹간의 의견조율도 과제다.

오는 15일 5대그룹과 채권단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는데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경영권 보장 = 합의문에는 채권단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해도 경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한 경영에 간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만약 경영을 잘못하면 채권단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 라며 "이는 주주로서 최소한의 권리" 라고 말했다.

특히 채권단은 분기별로 구조조정 이행상황을 공표할 예정이어서 5대그룹은 불안해하고 있다.

따라서 5대그룹은 채권단의 출자전환 주식을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로 해달라는 입장이지만 채권단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5대그룹은 또 워크아웃이나 사업구조조정때 경영권을 보장하는 각서를 체결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조치없이 단순히 '워크아웃은 기업회생' 이라든지, '경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한 경영에 직접 간여하지 않겠다' 는 정도의 불명확한 방침으로는 기업이 워크아웃에 적극적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15일까지로 예정된 5대그룹 워크아웃 대상기업 선정도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 오너 사재 출연 = 합의문에 사재출연과 관련한 구체적인 문구는 없다.

다만 소유경영인이 국민에게 약속한 사항은 당초 약속대로 이행한다고만 돼 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올 봄에 약속한 오너의 예금.주식 등 사재 출연 약속을 지키라는 의미" 라며 "재무구조개선약정에 구체적인 내역이 포함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돈으로 부채를 줄이든지, 유상증자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는 '성의 표시' 를 하겠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

5대그룹은 한결같이 "총수가 더 이상 내놓을 수 있는 사재가 없다" 면서 "기존 주식을 팔아 내놓거나 배당금을 출자하는 방안을 강구중" 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부 정부 관계자가 '숨겨놓은 재산' 운운하는데 대해 "근거없이 넘겨짚지 말아달라" 며 반발하고 있다.

◇ 5대그룹 사업구조조정 = 반도체의 경우 24일까지 현대와 LG가 책임경영 주체를 선정한다고 약속했지만 이들이 실제로 약속을 지킬지는 여전히 미수다.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는 양사의 입장은 아직 변화가 없으며 독자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또 구조조정안이 반려된 석유화학.항공기.철도차량 등 3개 업종은 15일까지 실행계획이 다시 확정될 계획이지만 사업구조조정위원회가 승인할만한 수준의 수정안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빅딜로 떠안는 과잉.중복 투자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도 관건이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대우전자를 합치면 중복 생산라인이 부지기수다.

이를 모두 끌고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비할 수도 없어 5대그룹은 고민이다.

과잉.중복 투자를 한쪽으로 몬 데는 성공했지만 이것으로 과잉.중복 투자가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고현곤.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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