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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일하고 더 벌자” 프랑스 103년 만에 일요일 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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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07년 이래 지켜온 프랑스의 일요일 영업금지 전통이 16일(현지시간) 103년 만에 사실상 깨졌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주 일요일 영업금지 완화 법안을 관보에 게재하는 공포 절차를 거친 뒤 처음 맞은 일요일인 이날 파리· 마르세유·릴 등 주요 대도시의 일부 상점과 쇼핑몰 등은 합법적으로 문을 열고 영업을 했다. 일요일 문을 열 때는 점원들에게 최소한 평일치 일당의 두 배와 하루 대휴를 줘야 한다.

프랑스 정부가 일요일 영업금지를 없애는 법안을 관보에 게재한 뒤 처음 맞은 일요일인 16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 거리의 일부 상점이 문을 열자 쇼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휴가시즌이 끝나는 9월이면 일요일 영업에 나서는 상점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 [파리 AP=연합뉴스]

샹젤리제 거리의 명품점 루이뷔통과 가방 전문점인 랑셀 등 일부 대형 매장이 이날 영업을 하고 손님을 맞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매장은 문을 열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바캉스 철이 끝나지 않은 영향이 컸다고 분석하고 주 7일 영업을 위한 준비가 끝나는 9월이 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프랑스가 일요일 영업금지를 없앤 것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더 일하고, 더 벌자’는 대선공약에 따른 것이다. 일자리를 늘리고 관광객의 지갑을 열어 경제를 살리자는 대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하지만 100년 넘게 신성시돼 온 일요일 휴무의 전통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주장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좌파의 불만이 들끓었다.

야당과 종교계의 반대로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개혁작업은 6월 파리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두 딸의 일요일 쇼핑을 계기로 가속도가 붙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와 관련, “미셸 여사와 두 딸이 파리의 가게를 찾으려 할 때 내가 전화를 걸어서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라며 일요일 영업의 당위성을 각계에 거듭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프랑스 상·하원은 결국 지난달 일요일 영업금지 완화 법안을 논란 끝에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사회당 등 야당이 이에 반발해 헌법위에 제소했으나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최근 실시된 이폽(Ifop)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요일 영업에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59%로, 반대한다는 응답자를 웃돌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벌써 일요일 영업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BHV 백화점 노조원들은 일요일 영업에 항의, 15일 파업에 들어갔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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