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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열리는 한·일 축제한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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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 사무라이가 주연이지만 그래도 극의 중심은 온갖 기행을 일삼는 도요토미다. 그는 임진왜란에서 왜병이 조선을 파죽지세로 휩쓸자 파안대소한다. “조선 민족에게 내 병사들의 창과 칼 맛을 보여줬다”며 기뻐한 것이다. 도요토미는 여세를 몰아 명을 거쳐 인도까지 진출해 아시아를 정복하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다.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은 이때만 해도 힘을 과시하려는 측면이 강했다. 전국시대를 통일해 일본이 국가의 틀을 갖추자 문물이 앞섰던 조선을 눌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차원이 달라졌다. 일본이 1500년 이상 머리 숙여 배운 조선과 중국은 힘없는 약소국에 불과했다. 러시아를 꺾고 아시아를 제압한 일본인들은 스스로의 힘에 놀라 열광했고 자신감과 우월감에 넘쳐 있었다. 집단최면에 걸려 도요토미처럼 과대망상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의 광란으로 한국은 큰 고통을 받았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사과했지만 패전이 아쉬울 뿐 진정한 반성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최근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교과서 채택이 확대되고 있고, 15일에는 전직 총리 두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보수층의 표를 의식한 소신 행동이지만 뻔뻔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봐도 일본은 참 화해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화해해야 한다. 의미 있는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다음 달 19~21일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일 축제한마당이 열린다. 개막식에는 차기 총리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김치 축제가 열리고, 연예인 공연도 준비된다. NHK는 도쿄 롯폰기힐스에서 열리는 행사를 중계해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기로 했다. 재계도 힘을 모아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과 나리타 유타카 덴쓰 최고고문이 실행위원장을 맡았다. 이 행사가 잘 뿌리내리면 양국 우호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우호 무드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다. 북한의 운명을 강대국들이 수시로 논의하는 현실에서 근린의 중국은 물론 일본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절대적이다. 일본이 도쿄 한복판에서 공동 축제의 멍석을 펴주는 것도 큰 방향으로는 한·일 우호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G2(미·중)’의 부각도 자리 잡고 있다. 미·일 동맹을 보호막으로 번영을 누려온 일본으로선 대국으로 부활하는 중국은 버겁다. 그럴수록 ‘안전판’으로서 한국과의 관계 강화를 희망한다. 한·일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은 이런 정세 변화가 좋은 계기일 수도 있다. 주변국과 두루 든든한 관계를 구축하면 ‘통미봉남’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김동호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