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책혼선 왜 이리 잦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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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정부의 정책결정이 발표된 뒤 보류되거나 부처간 또는 정부.여당간 이견을 노출하는 사례가 자주 보인다.

이런 현상은 정부에 대한 국민신뢰를 손상시킬 우려도 있고 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도 염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대표적 사례의 하나가 신정연휴의 하루 단축 발표였다.

다음달이면 바로 새해인 12월 들어 덜컥 이런 결정을 내렸다가 연휴를 전제로 예약을 받고 스케줄을 짠 관광.항공업계나 미리 새해달력을 만든 인쇄업계 등에 큰 혼란을 일으키자 정부는 관계장관 회의에서 이 문제를 재론키로 했다.

연휴를 하루 줄이자는 정부 결정 자체는 우리도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것이 가져올 파급효과나 부작용, 이해관계자의 반응, 국민여론 등을 고려하고 수렴했어야 했을 것이다.

정책결정에 기본적인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한 데서 혼선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이밖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령 그린벨트해제지역에 대해 당초 정부는 토지거래허가제를 실시한다고 했으나 국민회의측은 토지거래를 자유화할 것이라는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국민이 볼 때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실업자노조 설립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부에서는 허용방침을 밝혔으나 법무부에서는 반대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어 계속 미결상태로 남아 있다.

얼마 전 국민회의측이 식수 (食水) 전용댐 건설계획을 밝혔다가 흐지부지된 일도 있었다.

왜 이런 정책혼선이 빈발하는가.

한마디로 정책결정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결정.발표하기 전에 정책의 장.단기효과와 부작용을 검토하고 관계기관간 협의, 이해당사자와의 협의, 공청회 등을 통한 여론수렴 등 기본적인 과정에 충실했던들 혼선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정책이 나오는 과정을 보면 그것이 대선공약이었다는 이유로, 또는 대통령의 언질을 받았다는 것으로 정책이 최종 결정된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흘리고 발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계기관끼리, 또는 정부.여당간에 신중하고 진지한 협의가 있었는지, 내용을 더 손질하고 세련되게 다듬는 과정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때가 많았다.

정부 신뢰와 정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서도 이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현정부는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부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내용이 다르거나 뉘앙스에 차이가 나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여당간, 부처간 손발이 안 맞거나 신중치 못한 결정으로 정책혼선이 자주 일어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정책결정의 시스템을 보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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