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창설자 제르진스키 동상 철거 7년만에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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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옛 소련 인권 탄압의 상징적 인물인 제르진스키 동상 복원이 국가 두마 (하원) 의 결정으로 예정돼 러시아 정치권의 과거회귀 조짐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국가 두마는 지난 2일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 (KGB) 의 창설자 펠릭스 제르진스키 동상 복원결정을 내렸다.

모스크바 KGB (현 FSB) 본관 건물이 위치한 루뱐카 광장에서 91년 8월 23일 오후 11시 성난 군중에 의해 철거된 지 7년만에 바로 그 자리에 옛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이같은 조치에 일부 인권단체만 반발할 뿐 전반적으론 지지하거나 묵인하고 있는 분위기다.

레닌 동상 철거와 함께 옛 소련 붕괴의 상징이었던 그의 동상이 다시 세워지는 것은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러시아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개혁정책의 실패로 닥친 극심한 경제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건강악화 등으로 흔들리는 집권층, 이같은 현실정치에 실망감을 갖게 된 주민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제르진스키 동상 복원의 배경이다.

또 옐친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늘 비난해온 공산당 등 두마내 다수 세력이 '개혁거부 및 과거 회귀성향' 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결의를 주도한 공산당 등 좌파세력은 "제르진스키는 범죄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인물" 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제르진스키 동상을 밧줄로 끌어내리면서 "두번 다시 러시아 땅에 피의 숙청과 반인권적인 정치가 되살아나지 않게 하자" 고 소리를 높였던 7년전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비난의 목소리도 미약해 두마 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크렘린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러시아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절반가까이가 "하원 결정을 지지한다" 고 응답했다.

◇제르진스키 = 1877년 민스크 인근의 제르지노보에서 폴란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5년 러시아 혁명에 참가했고, 1917년 10월혁명 당시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에 선출돼 혁명의 핵심 역할을 했다.

혁명 뒤 반혁명처리 비상위원회를 이끌었으며 이 위원회를 모태로 KGB가 생겼으나 1926년 실각, 그해 사망했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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