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자 사라질 때가 꼭지라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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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비관론자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8부 능선쯤 왔다는 경고 신호다.”

그간 낙관적 전망을 펼쳐오던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14일 “지수가 목까지 차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근거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비관론자들의 ‘항복’, 그리고 증권사 목표주가의 상승행진이다. 3월 이후 급등한 코스피지수가 큰 조정 없이 1600선에 바짝 다가섰다. 당초 증권사들이 코스피가 하반기에 도달할 수 있는 상한치로 제시했던 선이다. 그러자 비관론을 펼치던 증권사들까지 마지못해 지수 전망치의 상단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곰(비관론자)’의 후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최후의 비관론자가 두 손을 들 때가 바로 꼭지였다는 주식시장의 오래된 경험 탓이다. 2007년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2년에 걸쳐 줄기차게 비관론을 펼쳤던 모 증권사의 유명 투자전략가가 돌연 낙관론으로 돌아선 것이었다. 마지막 남은 비관론자였던 그가 주가 목표치를 대폭 올린 지 얼마 안 지나 주가는 급경사 길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후퇴하는 곰들=증권가에서 비관론자로 꼽히는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향후 증시에 대해 “한계는 있지만 좀 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이 당초 전망과 다르게 움직이는 데 대해 그는 “외국인 매수세가 예상보다 강했고, 초저금리라는 상황이 경기 회복세와 결합되며 효과가 증폭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 코스피의 한계를 1450선이라고 봤던 한국투자증권은 이달 초 이를 1650으로 끌어올렸다. 김학균 선임연구원은 “생각보다 기업의 이익이 좋았고,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에 대한 수요도 컸다”고 말했다.

1분기 실적이 발표됐던 4월 중순에만 해도 곰들은 기업 실적 개선 요인을 대개 환율 효과에서 찾았다. 따라서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기업 실적이 둔화될 것이고, 이는 주가 조정 또는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란 논리를 펼쳤다. 1분기에 비해 2분기 평균 환율이 더 떨어졌지만 2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기업들이 속출했고, 외국인은 ‘바이 코리아’를 강화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직 완전히 백기를 든 것은 아니다. 기업 실적 개선은 ‘돈의 힘’에 따른 일시적인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은 현재 장세를 세계 각국 정부가 의기투합해 만들어내고 있는 ‘거품’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그 한계를 1850선으로 제시했다.

◆조정 경고는 여전=곰들이 걱정하는 건 쉬지 않고 달려온 시장의 힘이 한순간 꺾이는 것이다. 이종우 센터장은 “조금 꺾이고 다시 올라가고 하는 행태가 아니라 정점까지 올라갔다 쭉 내려오는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학균 선임연구원도 “6개월 이상 쉬지 않고 오른 사례는 과거 대세 상승기에도 찾기 힘들다”면서 “조정 폭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도 “1600선을 넘어가면 ‘파티’가 막바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낙관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조정이 오더라도 단기간에 그치거나, 주가가 꺾이는 ‘가격 조정’이 아니라 한동안 못 오르고 주춤대는 ‘기간 조정’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증권 오성진 WM센터장은 “최근 증시에서 가장 우려하는 출구전략은 내년 상반기에나 행동으로 옮겨질 것”이라며 “너무 일찌감치 ‘탈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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