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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안락사 의사' 케보키언 평가 엇갈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연쇄 살인범인가, 아니면 자비로운 천사인가.

지난 22일 미 CBS방송을 통해 안락사 장면이 소개되면서 안락사 문제를 미국 사회 전체에 부각시킨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 (70) 박사의 실체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수척한 얼굴과 퀭한 눈 때문에 차갑고 어두운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고통받는 말기 환자나 시한부 인생들에겐 고통을 덜어주는 구원자로 불리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미시간주 폰티액에서 중앙아시아 아르메니아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가족중 유일하게 대학문을 나온 '인재' 였다.

미시간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6.25전쟁때 참전, 군의관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종전후 60년대 사형수들의 시신을 의학 해부용으로 이용하자는 책을 써내 도덕적 논란을 일으켰다.

70년대에는 디트로이트시 인근 병원에 취업, 죽은 지 얼마 안된 사람의 피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수혈하는 실험을 하면서 '죽음' 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혈받은 환자가 간염에 걸려 병원측에 신고하는 바람에 곧바로 해고되는 신세가 됐다.

케보키언이 본격적으로 일반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90년 6월. 그는 회생가능성이 없던 한 알츠하이머병 여성환자로부터 편안히 죽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안락사 처벌법이 없는 미시간주에서 만나 처음으로 환자를 안락사시켰다.

당시 그는 버튼을 누르면 독극물이 환자의 신체에 자동 주입되는 일명 '자살기계' 를 스스로 개발, 승합차에 설치해 놓고 죽음을 도왔다.

이듬해 미시간주에서 의사면허를 정지당하고 약품구입마저 금지당한 그는 차량과 자신의 집 등에서 '자살기계' 나 독극물을 이용해 안락사를 강행, 안락사의 합법화를 위한 '투쟁' 에 나섰다.

케보키언은 죽음을 도울 때마다 환자가족의 동의를 구했으며 자신의 행위를 공개해왔다.

그의 인터넷사이트에는 92명의 명단이 올라 있으며 지금까지 모두 1백30여명의 안락사를 도와줬다.

이 때문에 네차례나 살인혐의로 기소됐지만 번번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구치소에 수감될 때마다 항의표시로 단식투쟁을 벌여온 그는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나의 일생을 바쳤다" 며 자신의 행위가 신념에 바탕을 둔 정당한 행위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변호인 게오프레이 페이거는 "케보키언도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며 그의 안락사 지원은 '평화롭게 죽을 권리' 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현재 고향 폰티액에서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 그는 바흐의 음악을 즐기며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다.

한편 '안락사 연구와 지침 기구 (ERGO)' 등 안락사 지지단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고 안락사의 합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영국의 킹스대학병원의 사이먼 웨슬리 교수 등 반대론자들은 "환자 스스로 죽으려는 충동은 병 자체의 고통보다 심리적 위축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며 환자에게 삶의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25일 발표된 미 CBS방송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9%만이 케보키언 박사를 살인죄로 처벌하는 데 동의했으나 39%는 이에 반대,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될 조짐이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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