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은 왜 말이 없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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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해안 장전항에 1천여 금강산 관광단이 단잠을 자고 있을 무렵, 서해안 강화도 앞바다에는 북한 간첩선이 내려왔다가 도주했다.

분단 50여년 만에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첫 배가 뜨자마자 북은 간첩선을 서해안으로 내려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들로선 북한 당국의 이런 처사를 도저히 이해하려야 할 수가 없다.

더더욱 답답한 일은 이런 기막힌 사태가 벌어졌다면 북은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든지, 사과를 해야 할 터인데도 지금껏 아무 말이 없다.

우리 정부도 북측에 즉각 문제를 제기하고 진상을 따져봐야 할 터인데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우리는 화해와 교류.협력이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기본자세여야 함을 누누이 강조해왔고 그 실천을 위해 선도적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측의 대남 (對南) 자세가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음에 우리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이미 유사한 사태가 지난 6월에도 벌어진 적이 있다.

현대 정주영 (鄭周永)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한 지 1주일도 채 안돼 북의 잠수정이 침투했다.

그때 우리 정부는 사과와 재발방지 보장이 없다면 금강산관광은 추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나. 2차 소떼방북이 잠시 지연됐을 뿐 북측의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받지 못한 채 금강산관광 첫 배는 뜨지 않았던가.

그 배가 뜨자마자 이번엔 간첩선이 내려온 것이다.

북한 금창리 주변의 핵시설 의혹이 한.미.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깊은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건만 북은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내정 간섭이니 사찰 대가를 지불하라는 등 엉뚱한 대응만 하고 있다.

이래선 북에 하등 이로울 게 없다.

제네바합의 이후 우리는 핵개발을 하지 않는다, 의혹이 있다면 와서 봐라 하는 게 정상적 국가라면 취할 자세다.

이렇게 하지 않으니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북을 화해와 교류.협력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정부나 국민들마저 등을 돌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새 정부의 대북 화해 포용정책의 첫 실현이 금강산관광이다.

한번도 아닌 두번씩 화해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북의 대응을 그대로 방치해선 또 어떤 불상사가 생겨날지 모른다.

정부는 북에 대해 엄중하게 따져야 한다.

사과받을 것은 받고 재발방지 보장을 받아내야 한다.

북측 당국도 이젠 분명한 답을 해야 한다.

남쪽의 화해정책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기본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핵의혹은 빨리 풀수록 북측에 유리할 것이다.

총풍이니 북풍이니 남쪽의 내정간섭엔 북한측 성명이 그토록 잦더니 어째서 자신들과 직접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이토록 묵묵부답인가.

북한은 이제 입을 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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