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출판가 불법복제 난무 '이중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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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가뜩이나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출판업계가 불법 복제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전문가도 판별하기 어려운 복제품이 서점가에 버젓이 나돌고 있는가 하면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복사품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불법복제업자들은 시중에 잘 팔리는 책의 정본을 구입해 일주일만에 인쇄를 마친 뒤 점조직을 통해 감쪽같이 유통시켜놓고는 자취를 감추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들은 대개 정가의 30%에 책을 유통업자에 넘기고 유통업자는 다시 정가의 50~60%에 일선 서점에 팔고 있다.

최근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몬테소리. 이 회사는 6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아동도서 '피카소 동화나라' 를 3천질 (1질 50권) 이나 복제한 출판업자를 최근 찾아냈다.

혐의자는 인쇄업자와 제본.배본업자, 코팅전문가.유통업자 등 모두 4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이었다.

베스트셀러인 김진명씨의 '하늘이여 땅이여' 도 불법복제의 표적이었다.

이 책을 펴낸 해냄출판사 역시 4개월간 유통경로를 뒤쫓아 불법복제유통 조직을 적발했다.

민음사가 출판한 이문열씨의 '삼국지' 복제본 6백질도 얼마전 동대문에 있는 유통업체 창고에서 발각된 바 있다.

전자출판물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서울시스템이 4년간 50여억원을 들여 만든 전자출판물 '조선왕조실록' '고종순종실록' 의 정본가격은 2백만원에서 6백만원선. 그러나 무단복제품은 단돈 4만원 이하로 유통되고 있는데, 현재 정본의 20배에 이르는 복사본이 나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현상은 아동물.학습지.전집류.전자출판을 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사자들은 공개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불법복제업자가 횡행하는 이유는 이들을 제재하는 법적 근거가 약하기 때문.

현행 저작권법은 불법복제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고 3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현장을 해당 출판사가 적발한 다음 그 정황 증거를 확보해야 비로소 고소할 수 있는 등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

'한국사' 시리즈 무단복제로 피해를 보았던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지적 재산을 보호하는 강력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한국 출판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고 말했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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