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해상왕 장보고' 로마 첫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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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실내가 어두워지면 흰옷차림에 만장을 든 배우들이 상여를 앞세우고 객석 뒤편에서 입장한다.

1층 객석과 이를 말굽형으로 둘러싼 4개층 발코니의 관객들이 일제히 고개를 움직이는 순간이다.

이어 훤히 밝아진 무대는 상여의 주인이 아직 '궁복' 이란 이름의 소년이던 시절로 돌아간다.

그가 바로 8세기 중국과 신라를 넘나들며 동아시아 해상 무역을 장악한 장보고. 지난 6일 (현지 시각) 극단 현대극장의 창작뮤지컬 '해상왕 장보고' (김지일 극본, 표재순 연출, 임동진.김성원.우상민.송용태 등 출연)가 개막된 이탈리아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장보고는 1천년의 시공을 넘어 한국의 문화사절로 지중해의 반도국을 찾았다.

바라춤, 사물반주를 곁들인 불춤, 청사초롱의 행렬, 창호지 실루엣에 비친 그림 묘사 등 공연 곳곳에 등장하는 한국적인 맛은 관객들의 시선을 모은 요소.

개막 첫날과 둘째날 연 2회 공연을 관람했다는 란지아 안코나 (계간지 '씨빌리타 메디테라니아' 기자) 는 "잘 모르는 문화인데도 우아한 발성, 춤과 드라마를 결합한 연출력이 큰 재미를 주었다" 면서 '바다를 열자' (Open the Sea) 라는 장보고 (임동진 분) 의 노래는 세계가 하나가 되자는 의미로 공감을 느끼게 했다" 고 칭찬했다.

이번 공연은 대관이 아니라 로마 오페라극장측의 초청으로 11월부터 시작되는 정규 오페라 시즌 첫머리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다.

장보고를 마르코 폴로에 비유한 것은 '코리에르 델라 세라' '일 템포' 등 로마 현지 언론이다.

1백년 가까운 역사와 2천2백여 객석을 갖춘 로마오페라 극장은 스태프가 약 3천명. 개막 첫날은 궂은 날씨에 로마시내 택시파업까지 겹쳐 현대극장측을 바짝 긴장시켰음에도 관객들은 노래마다 박수로 답해 배우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일부 관객의 표현을 빌면 "미국식 뮤지컬과 한국전통음악의 혼재, 극의 흐름을 따라잡기에는 불충분한 번역, 오케스트라 아닌 녹음반주" 등 문화 '사절' 을 넘어 문화 '상품' 이 되기에는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 많았다.

로마 =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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