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젠 정치의 질을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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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는 여야총재회담이 어렵게나마 열린 사실 자체를 평가하고 안도하는 마음이다.

새정부 출범후 8개월 이상 끌어온 극단적인 여야대립과 대결을 종식하고 대화와 협력의 새정치가 나와야 한다는 것은 국민적 바람이었다.

안으로 경제위기와 첩첩한 난제 (難題) 를 안고 있고, 밖으로 중요한 정상외교 일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분열적.소모적 정쟁 (政爭) 이 계속돼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여야 스스로도 절감하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총재회담으로 국면전환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며, 이제부터 이 계기를 살려 말 그대로 대화와 협력의 성숙한 정치로 우리 정치의 질 (質) 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여야총재는 회담에서 대단히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많은 합의를 했다.

소모적 정쟁을 지양하고 위기극복을 위한 여야협의체를 만들고 정기국회의 남은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며 지역갈등해소를 위해서도 공동노력하기로 했다.

또 두 총재는 여야가 '동반자적' 관계를 토대로 상호존중과 협력의 정신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앞으로도 필요하면 총재회담을 갖기로 했다.

우리는 이런 합의를 환영하고 실천을 위한 여야의 구체적 노력을 기대하면서도 8개월 이상 끌어온 상호증오와 불신이 이런 한번의 만남과 합의문으로 단번에 해소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여야는 이 합의를 토대로 이제부터 증오와 불신을 신뢰와 화합으로 바꾸는 노력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여야는 이번 합의사항 자체를 전술적 득실 (得失) 차원에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령 여당은 이로써 정기국회의 예산안 및 일련의 법안처리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치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예산안.법안처리 과정에서 일방통행식 처리를 고집한다면 여야관계는 다시 암초에 부닥칠 수도 있다.

또 야당은 이번 회담으로 의원사정과 판문점사건 등의 처리가 유야무야되길 기대하고 그것이 안될 경우 다시 반발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찰권행사가 정치합의로 좌우될 수는 없는만큼 야당의 무리한 요구는 다시 여야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총재회담의 합의사항을 구체적 현안 하나하나에 반영해 나가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런 노력의 축적으로 우리 정치의 질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본다.

대화와 협력 또는 동반자라는 말은 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서로의 인내와 신뢰바탕이 없으면 모처럼의 건설적인 합의도 그 중요성이 반감 (半減) 되기 십상이다.

여야는 지난 8개월여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모처럼 마련된 좋은 계기를 잘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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