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회담 성사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피말리는 협상이었다.

10일 김대중 - 이회창 총재 회담은 시작 1시간30분전인 오전 11시쯤 가까스로 극적 타협이 이뤄졌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계속됐다.

한나라당이 합의문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한 3개항 (총풍사건.고문 및 불법감청.인위적 정계개편) 처리문제가 끝까지 쟁점이었다.

막판 협상 창구는 한화갑 (韓和甲.국민회의).박희태 (朴熺太.한나라당) 총무. 두사람은 오전 9시10분 63빌딩 음식점에서 만나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사람은 "어떻게든 회담을 성사시키자" 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韓총무는 바로 빅딜안을 내놓았다.

"문제의 3개항 표현을 다소 완화시켜 한 문장으로 묶어 합의문에 넣는 대신 경제청문회 날짜를 12월 8일로 못박자" 는 포괄적인 내용. 전권을 갖고 나온 韓총무는 확신을 갖고 제안했다.

朴총무는 상대방의 의중을 몇차례 타진하다가 "알겠다" 며 옆방으로 가 당사로 전화를 걸었다.

朴총무는 韓총무의 안 (案) 이 여권의 최종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회창 총재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李총재의 첫 반응은 "3개항을 확실히 확인해둬야 한다" 고 부정적이었다.

朴총무는 다시 4~5차례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

李총재 측근들도 "시간이 없다" "합의문은 추상적으로 해두고 회동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되지 않느냐" 고 설명했다.

결국 李총재는 청와대에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두 총무는 '합의문 번복 소동' 의 재발을 막기 위해 최종 합의문은 자필로 작성하고 각자 사인한 뒤 합의문을 서로 교환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