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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이훈범의 시시각각

북한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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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발트해 3국의 기적’을 아시는지.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세 나라가 1940년 소비에트연방 가입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과가 투표 하루 전에 발표돼 버렸다. 소련 국영 타스 통신이 미리 작성해 놓은 기사를 실수로 내보낸 탓이었는데 기적처럼 투표 결과와 일치했다. 물론 대답은 ‘찬성’, 독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소련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 천명이었다. 그야말로 ‘전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이나 행할 수 있는 기적이었다. ‘타바리시 스탈린’의 기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1947년 최고 소비에트 선거에서 스탈린은 140%의 득표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좀 민망했던지 다음 날 선거당국이 해명을 내놓았는데 스탈린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표명하려고 이웃 선거구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그 이듬해 수립된 북한 정권은 그런 기적 만들기부터 받아들였다. 기적을 행할 수 없으면 국가지도자 자격이 없었다. 열네 살 때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고 열여덟 살 때 이미 주체사상을 창시해 조선 혁명의 길을 밝힌 김일성만이 그 임무를 맡을 수 있었던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해방도 되기 전인 1930년에 주체의 뜻을 품었다는 건 범인들은 상상도 못할 기적일 따름이다.

‘위대한 혁명 가계’ 김일성 가문의 피는 속일 수 없었다. 2세 김정일은 탄생부터 범상치 않았다.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던 1942년 백두산의 밀영에서 김정일은 태어났다. 김일성이 1940년 소련 땅으로 넘어가 88특수여단에서 복무했으며 해방 후인 1945년 9월에 평양으로 돌아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성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으니 이런 기적이 또 어디 있겠나.

북한에는 김일성 가문 말고는 항일 투쟁을 한 사람이 거의 없다. 안창호·신채호 같은 독립운동가들도 ‘외세를 등에 업은 사대주의자’일 뿐이다. 김일성과 부인 김정숙, 김정일 세 사람만이 ‘백두산의 3대 장군’이요, 김일성의 부친과 모친 김형직과 강반석, 그리고 삼촌·외삼촌들만이 ‘불요불굴의 혁명투사’다. 소련의 붉은 군대가 아니라 김일성 일가들이 북조선을 해방시킨 것이다. 실로 위대한 기적이다.

그러니 김일성이 죽었을 때 백학 떼가 그의 동상 위를 날며 슬퍼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며,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판문점 방문 때 행여 남측의 저격이 있을까 하늘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를 끼게 만들었다가 초소의 군인 앞에 다가서자 씻은 듯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웅장한 모습’을 비췄다는 김정일 말고 누가 그 일을 맡겠나.

그에 비하면 3세의 기적은 미약한 편이다. 클린턴이 태평양을 건너와 장군님께 사죄하게 만든 “김정운 대장의 지략”과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룩한 “세심한 지도와 배려” 정도다. 하지만 호랑이는 개를 낳지 않는다. ‘백두의 혈통을 이어받은 김 대장’의 기적이 곧 펼쳐질 게 분명하다. ‘3년 내 주택 10만 호 건설’ 같은 호언은 그걸 예고하는 작은 기적일 뿐이다.

공산주의 기적은 폭력이 낳는다. 그 힘이 셀수록 큰 기적을 만든다. 그걸 증명한 게 흐루쇼프다. 그가 전임자인 스탈린의 범죄상을 비판하는 연설을 할 때 누군가 외쳤다. “살아있을 땐 아무 말 못하다가 이제 와서 비난하는 게 부끄럽지 않소?” 흐루쇼프는 화난 표정으로 “누구냐”고 고함쳤다. 일순 장내는 얼어붙었고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그제야 흐루쇼프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소? 내가 스탈린을 막지 못한 이유를.” 수백만 인민이 굶어 죽고 감옥만도 못한 북녘 땅을 사회주의 인민 낙원이라 믿게 만드는 북한의 기적도 그런 폭력에서 나온다. 그걸 모를 리 없는데 북한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종북 세력이 남한 땅에 존재하는 것도 가히 믿기 어려운 북한의 기적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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