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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도둑' 막는 기발한 도용방지·적발 기술 세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기술 도둑을 막아라 - .애써 만든 첨단 개발품이나 저작물의 기술을 도둑맞지 않게 막는 방법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복제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있는가 하면, 베껴간 저작물을 사후에 적발해 내는 것까지 다양하기 짝이 없다.

기상천외한 도용 방지.적발 기술 세계를 조명해 본다.

미국의 종자회사인 델타앤드파인랜드사 (社) 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터미네이터'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의 요체는 영화제목 터미네이터와 같이 종자의 목숨을 한 세대로 끝장내는 것. 이 회사가 개발한 우수 품종을 몰래 훔쳐 심는다 해도 종자 덕을 보는 수확은 딱 한 번이다.

수확량이 많은 품종이라고 멋모르고 종자를 따뒀다가 이듬해 밭에 뿌리면 싹도 보기 힘들다.

농촌진흥청 윤진영 박사는 "종자에 기술적으로 독소 유전자를 삽입, 이 종자에서 열린 2대 종자를 받아 심으면 저절로 자살하도록 프로그램이 돼있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이 독소 유전자의 기능은 발아를 억제하는 것. 사람이나 동물에게 직접적인 해를 주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 회사는 목화와 담배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 시험에 성공했으며 2000년께부터 이런 종자의 대량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올 봄 자국의 특허등록을 마친 이 회사는 농산물 주요 생산국인 캐나다와 호주에도 특허를 출원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특허출원 절차를 밟다가 최근 돌연 중단했다.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국가들은 "도용방지도 좋지만 인위적으로 대 (代) 를 끊는 것은 아무리 식물이라 하더라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또 전통적으로 인정돼온 농가의 채종 (採種) 권을 부정하는 것도 문제. 따라서 이 기술의 규제 여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듯하다.

디지털 영상.음향의 복제를 적발해내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상명대 정보통신학부 최종욱 교수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상.음향 워터마킹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워터마킹이란 원래 화폐 위조를 방지하는 기술을 가리키는 용어. 최교수는

"노래에 주파수 변환을 통해 특이한 디지털 신호를 집어넣어 이것의 유무로 정품과 복제품을 가려낼 수 있다" 고 말했다.

이 신호는 전문적인 기술자라도 찾아내기 어렵고, 또 음악소리와는 주파수가 달라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영상물 워터마킹도 원리는 같다.

상명대 연구팀은 자기 실험실의 로고를 화면에 집어넣어 겉으로는 전혀 눈에 띄지 않지만 검출법을 이용하면 시각적으로 드러나게끔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음반.비디오물의 복제를 막기 위해 포장이나 상품의 일련번호 제시 등 수작업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저작시대에는 워터마킹과 같은 기술로 이를 적발해내는 경우가 보편화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아예 복제를 시도하면 정품인 프로그램까지 망가지도록 하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이는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 하지만 복제방지를 위해 개발한 컴퓨터 바이러스가 뜻밖의 부작용으로 '골칫거리' 로 둔갑한 전력도 있어 실행이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용 방지.복제 적발 기술이 개발됐다 해서 기술적으로 안심할 수만은 없는 실정. 이들 기술은 아직 개발 초기라서 맞대응기술이 나오지 않았지만 화폐위조에서 보듯 도둑기술 역시 발빠르게 개발되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위폐기술은 화폐제조 약 1백년 후인 기원전 5백40년에 등장, 두 기술이 끊임없이 경쟁하며 '발달' 을 거듭해왔다는 것이 정설. '기술로 기술 도둑 막기' 는 특히 21세기 산업의 양대 축으로 예상되는 전자.전산과 생명공학분야를 중심으로 도용범들과 한없이 치열한 각축을 벌일 듯하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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